가족의 숨소리가 달라지고 혈압이나 산소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해 임종 전 증상을 찾아보고 계신가요? 병동에서 만난 한 따님도 눈시울이 붉어진 채 제게 아빠가 저 상태로 얼마나 가실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종양내과 간호사로 일하며 병실에서 실제로 본 숨과 소리, 혈압과 의식의 변화를 책에 적은 장면 그대로 옮겼습니다. 같은 변화가 환자마다 어떻게 다르게 흘러갔는지, 그때 가족과 간호사가 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도 함께 보실 수 있습니다.

목차
- 병실에서 본 임종 전 변화 다섯 가지
- 그렁거리는 소리와 오르내리던 산소포화도
- 가족이 모두 오기 전에 멈춘 숨
- 1분에 40회 가까이 쉬던 숨
- 아빠 저 상태로 얼마나 가실 수 있나요
- 목소리에 뒤늦게 눈을 뜨던 분
- 며칠 사이에 떠나신 분
-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병실에서 본 임종 전 변화 다섯 가지
종양내과 병실에서 임종을 앞둔 분들에게서 제가 본 변화는 이랬습니다.
- 숨: 1분에 40회 가까이 가빠지고, 평소 쓰지 않던 근육까지 써서 쉬던 숨
- 소리: 목구멍을 넘어오는 토사물로 그렁거리던 소리
- 산소포화도: 정상 아래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하던 수치
- 혈압: 승압제를 줄이면 급격히 떨어지던 혈압, 알람과 함께 뜬 50/30
- 의식: 희미해지던 의식, 목소리를 듣고 뒤늦게 눈을 뜨던 순간
그렁거리는 소리와 오르내리던 산소포화도
그날은 만난 지 네 시간밖에 되지 않은 환자의 임종을 이미 한 번 지켜본 뒤였습니다. 몇 시간 뒤 저는 또 한 사람의 임종 과정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녀 역시 그날 처음 맡아 간호하게 된 환자였습니다.
역시나 의식은 희미했고 목구멍을 넘겨오는 토사물로 그렁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산소포화도가 정상 미만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기를 반복했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99쪽
먼저 흡인을 해야 했습니다. 입에 고인 구토물이 기도로 넘어가면 그대로 사망으로 이어질 수 있었으니까요. 깊숙이 흡인하려면 입안에 구인두기도기를 넣어야 했는데 그게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 의식이 없는 그녀는 곁에 있던 며느리의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손으로 턱을 잡아 내리며 힘겹게 기도기를 넣었고, 그 사이로 흡인 팁을 넣자 갈색 구토가 기계를 통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산소포화도는 그 뒤로도 계속 오르내렸습니다. 마침 담당 의사가 들러 산소 주입량을 더 늘리자고 했고, 보호자와 어젯밤 통증에 힘들어하지 않았는지 몇 마디를 나눈 뒤 돌아갔습니다. 흡인을 정리하고 나서야 저는 그녀의 혈압을 잴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때 이미 임종 직전이었습니다.
가족이 모두 오기 전에 멈춘 숨
혈압계가 여러 번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더니 알람 소리와 함께 50/30이라는 숫자를 띄웠습니다. 그 숫자는 그녀의 임종이 코앞에 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믿을 수가 없어 청진기를 가져와 다시 쟀지만 결과는 같았고, 저는 급히 담당 의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녀는 연명 의료를 하지 않는 데 동의했던 환자였습니다. 의사는 일단 가족들이 다 모일 때까지만 승압제를 써 보자고 했습니다. 임종까지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약물에 대한 반응이 나타날 새도 없이, 힘겹게 숨을 내쉬다가 멈추었다. 그녀로부터 측정되는 모든 수치가 ‘0’이 되었다. 임종이었다. 100쪽
고작 몇 시간 사이에 두 분의 사후 처치를 하고 나니 몸이 먼저 지쳐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전과 분명히 달라진 것이 있었습니다. 죽음에서 오던 심리적인 충격이 그날은 저를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덩그러니 죽은 사람이 되어 버린 시신을 바라보며, 저는 끝이 존재하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했습니다.
1분에 40회 가까이 쉬던 숨
숨이 먼저 달라지는 밤도 있었습니다. 나이트 근무 중 다른 병실에서 콜벨이 울려 가 보니, 환자가 평소와 달리 숨 쉬는 것을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호흡수를 세어 보니 1분 동안 거의 40회에 육박했습니다. 산소포화도 측정기를 가져오자 빨간 불빛이 깜빡이며 알람이 울렸고, 수치는 정상 미만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에 떠오른 말은 ‘아, 올 것이 왔다.’였습니다.
설사 때문에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던 분이라 움직여서 생긴 일시적인 증상일 수도 있었습니다. 심호흡을 격려하며 변기 옆에서 한참 동안 수치를 지켜보았고, 조금 안정되는 듯해 잠깐 나왔다가 몇 분 뒤 다시 가 보니 그는 침대에 누워 가쁜 숨을 고르고 있었습니다.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급히 당직 의사에게 알려 동맥혈 검사를 하고 산소를 적용했습니다.
산소 포화도가 점차 오르기 시작하고 환자의 호흡수도 점차 안정되는 것 같았지만, 평소 편하게 숨 쉴 때 사용하지 않던 근육까지 힘겹게 사용해가며 호흡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167쪽
동맥혈 검사 결과는 꽤 심각했습니다. 직접 와서 환자를 본 당직 의사는 숨 쉬는 게 예사롭지 않고 호흡음도 비정상이라며 바로 기관지를 넓히는 호흡기 치료를 하자고 했습니다. 사실 그는 이미 호스피스 케어를 준비하던 분이었습니다. 폐암에 더해 폐혈관을 막은 색전이 점점 심해지고 있었고, 혈소판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낮아 피를 묽게 하는 약도 쓰기 어려웠습니다.
더는 해 줄 게 없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리는 곳이 바로 암 병동이다. 이미 이런 상황이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은 환자의 보호자에겐 설명된 상태였다. 이러한 환경에서 환자가 생의 마지막 과정을 편안하고 힘들지 않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 여기 종양내과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었다. 168쪽
저는 몇 번이고 그 병실을 들락날락했습니다. 약으로 기관지를 넓히고 산소를 적용해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놓는 데까지는 도울 수 있었지만, 그다음 계속 나빠지는 과정까지 제가 어찌할 수는 없었습니다. 대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하는 착잡함을 그 병실을 오가며 느끼곤 했습니다.
아빠 저 상태로 얼마나 가실 수 있나요
몇 달 동안 간호했던 말기 방광암 환자분이 있습니다. 응급 중환자실을 거쳐 처음 입원한 날, 그는 요로계 감염으로 패혈증이 온 상태였습니다. 고열이 나고 혈압이 떨어져 승압제로 겨우 정상 혈압을 유지했고, 갑자기 열이 오를 때면 온몸이 덜덜 떨리면서 의식도 함께 처졌습니다. 조금 안정되었나 싶어 승압제를 줄이면 혈압이 급격히 떨어졌습니다. 언제 갑자기 돌아가실지 몰라 온 가족이 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이었습니다. 얼굴이 한껏 상기되고 땀방울이 맺힌 채 일하던 제게 그의 따님이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아빠 저 상태로 얼마나 가실 수 있나요?” 79쪽
그녀의 눈시울은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몇 마디 하는 것도 부담스러울 만큼 바빴지만 그 눈을 보고는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 상태와 어떤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간략히 설명해 드린 뒤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상태 변화는 정말이지 제각기 달라 누군가는 패혈증을 무사히 넘기지만, 누군가는 머지않아 사망에 이르곤 했기 때문에 환자의 남은 여명은 그 누구도 정확히 말씀드릴 수 없다고 전했다. 80쪽
따님은 눈물을 머금은 채 제 눈을 피하지 않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같은 이야기를 이미 들었겠지만, 믿고 싶지 않아 제게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그는 그때의 고비를 넘겼고 입원 치료는 장기전이 되었습니다. 금식하던 그가 어느 날부터 물을 마시고 미음을 먹더니, 딸이 사 온 팥죽 한 그릇을 다 비워 낸 날도 있었습니다.
목소리에 뒤늦게 눈을 뜨던 분
그 긴 입원 동안 그의 의식 수준은 자주 바뀌었습니다. 제가 다가가면 따님은 “아빠, 아빠가 좋아하는 선생님 오셨어.” 하고 아버지에게 제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어 했습니다. 저는 그가 의식이 있건 없건 귀 가까이에 대고 어젯밤에는 잘 주무셨는지,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씩씩하게 묻곤 했습니다. 제 목소리에 뒤늦게 눈을 뜨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며칠 사이에 떠나신 분
그는 고비를 넘긴 뒤로도 한동안 입원해 있었습니다. 근무가 끝나고도 퇴근 직전이면 가래가 많이 끓어 숨쉬기 힘들어하시지는 않는지 그 병실에 들르곤 했는데, 며칠 사이에 그렇게 세상을 떠나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어느 날 출근길, 6층에서 열린 엘리베이터 문 바로 앞에 그의 아내가 눈물을 훔치며 서 있었습니다. 저를 보자마자 그녀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선생님… 우리 그이 가셨어요.”
저는 급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습니다. 편하게 가셨느냐고 묻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닦았습니다.
세 분의 시간은 서로 달랐습니다. 50/30이 뜬 그녀는 승압제가 듣기도 전에 떠났고, 숨이 1분에 40회 가까이 가빠졌던 분은 산소를 단 그 밤 수치가 다시 올라왔으며, 따님이 얼마나 가실 수 있느냐고 묻던 아버지는 그 고비를 넘기고도 오래 병실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병동에서 저는 남은 시간을 말씀드리는 대신, 아직 청각은 살아 있으니 하고 싶은 말씀을 지금 하시라고 권하곤 했습니다. 그 말을 건넨 가족들의 이야기는 임종 전 마지막 말, 간호사가 곁에서 들은 따뜻한 인사에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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