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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 전 마지막 말, 간호사가 곁에서 들은 따뜻한 인사

임종 전 마지막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가족에게. 아직 들으실 수 있다고 전하고 곁에서 그 인사를 들었던 종양내과 간호사의 기록입니다.

8월의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심장 리듬에 맞춰 물결치던 모니터의 그래프가 일직선으로 고요히 흘렀고,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던 50대 초반의 남성이 생을 마감했습니다. 저녁 7시 43분이었습니다. 그 몇 분 전, 아내는 남편의 얼굴 가까이에 입을 대고 이제껏 정말 고마웠다고 말했습니다. 남편의 눈은 초점 없이 허공을 향하고 있었는데, 눈가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습니다.

저는 종양내과 병동에서 일했던 간호사입니다. 그 병동에서 저는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한 환자의 가족에게 아직 들으실 수 있다고 전하는 사람이었고, 그다음에 병실에서 오가는 말들을 곁에서 들었습니다.

목차

  1. 아직 들으실 순 있으니까
  2. 이런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이
  3. 이 사람 정신이 있을까요
  4. 고맙다, 사랑한다
  5. 이 이야기가 담긴 책

아직 들으실 순 있으니까

첫 만남부터 그의 의식은 명료하지 않았습니다. 이따금 흘러나오는 앓는 소리와 얼굴 찡그림만이 그의 고통을 대변해 주는 듯 보였고, 40도가 넘는 고열이 며칠째 이어져 몸은 불덩이처럼 뜨거웠습니다.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힘겹게 숨을 내쉬고 있었지만 당장 임종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널뛰는 맥박과 빠른 호흡수 때문에 모니터 알람이 빈번히 울렸고, 그때마다 가족들은 화들짝 놀라며 저를 찾았습니다. 저는 뛰어가서 수치를 보고 임종 직전인지를 확인하곤 했습니다.

그를 오래 간호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를 포함한 가족들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는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졌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제 눈에는 환자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는 것들이 먼저 들어왔습니다. 최대치로 공급 중인 산소마스크가 너무 조여진 채 얼굴에 고정되어 볼과 귀 뒤에 빨간 자국이 나 있었습니다. 거즈를 가져와 고정 끈을 돌돌 말아 감쌌습니다. 보호자와 힘을 합쳐 그를 옆으로 누이면 아내는 젖은 물수건으로 남편의 뜨거운 등을 정성스럽게 닦아 내었습니다.

"아이, 이렇게나 뜨거워서 어째. 후후."

그녀는 남편의 등에 바람을 불어 넣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요. 점차 숨을 쉬는 간격이 짧아지고 과호흡과 무호흡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가족들도 이 변화를 가까이서 보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수치의 의미까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더라도, 쉬지 않고 울리는 알람 소리와 함께 그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족들에게 이 비정상적인 수치들이 임종에 가까워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있는 그대로 전했습니다.

아직 들으실 순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 하시겠어요. 91쪽

가족들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내가 가장 먼저 그의 얼굴 가까이로 향했습니다.

여보, 이제껏 정말 고마웠어요.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했어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이제 마음 편히 가세요. 92쪽

아내의 눈에서는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습니다. 이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도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잠시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겨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가족들의 따뜻한 인사를 들으며, 허공을 바라보던 눈이 채 감기기도 전에 그는 임종했습니다. 슬프지만 그래도 따뜻함이 함께했던 임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곁을 지키고 있었고,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입으로, 마음으로 충분히 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후 처치를 마치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병실에서 나온 아내분이 저를 부르며 걸어오셨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아직도 눈동자가 촉촉이 젖어 있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그이가 편하게 가신 것 같다고, 잔잔히 떨리는 목소리로 저를 꼭 안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남편을 떠나보낸 것이 얼마나 슬프고 힘겨울까요. 그런데도 고맙다는 마음을 손수 전하러 온 그녀를 저도 꼭 안아 드렸습니다. 너무 고생 많으셨다고, 분명 좋은 곳으로 가실 거라고.

이런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이

저는 다섯 살에 아빠의 죽음을 겪었습니다. 아빠 무릎에 앉아 장난치던 느낌은 아직도 제 안에 살아 있지만, 캄캄한 새벽녘 누군가 저를 태우고 간 장례식장의 기억 이후 제게 아빠는 없었습니다. 그 뒤로 죽음은 제게 강력한 금기였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채 항상 두려워하며 저와 관련 없는 것이라 믿고 살았습니다. 그러다 제가 가장 두려워해서 가장 외면하고 싶었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다뤄야만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빠의 죽음 때문일지는 몰라도, 죽음을 앞둔 환자를 지켜보는 가족들에게 저는 자연스레 감정이 이입되곤 했습니다. 죽기 직전까지 살아 있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것을 배운 뒤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충분히 전할 수 있도록 곁에서 격려하는 것이었습니다.

2026년 8월 학교 도서관 독서모임에서도 저는 학생들에게 같은 말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죽기 직전까지, 그리고 죽음에 닿는 그 순간까지 가장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감각이 청각입니다.

2026.08 학교 도서관 강연 · 39:39

"너무 고생 많았어요, 사랑해. 여보." "아빠, 이제는 고통 없이 쉬세요." "우리 걱정하지 말고 편히 가세요. 어머님." 107쪽

이런 인사를 나눌 기회조차 없이 아빠와 이별했던 저로서는 그들의 마지막 인사에 가슴이 저며 오곤 했습니다. 때로는 의식이 없던 환자가 임종 직전 가족들의 말을 듣고 눈가가 촉촉이 젖어 있는 것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를 듣고 흘린 눈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저의 과한 감정이입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이 사람 정신이 있을까요

어느 날에는 만난 지 네 시간밖에 되지 않은 환자의 임종을 지켜야 했습니다. 회진 시간에 뒤늦게 찾아온 의사가 가족들에게 환자분 상태가 좋지 않다고 설명했고, 보호자는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는데 당장은 아닐 거로 생각했다고 답했습니다. 가망이 없는 거냐는 물음에 의사는 머뭇거리며 의료진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했습니다. 혈압이 이미 현저히 낮은데도 임종이나 죽음 같은 직접적인 단어는 오가지 않았고, 옆에서 듣던 저는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산소포화도가 서서히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보호자들에게 산소 수치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어 몇 분 내로 임종하실 수도 있다고, 아직 청각은 살아 있으니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하시라고 전했습니다. 그의 아내는 눈물을 머금은 채 물었습니다.

이 사람 정신이 있을까요? 98쪽

지금 하고 싶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게 남편에게 전달될까, 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아내의 목소리를 듣고 내면에서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이 가족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해 나중에 확인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연구팀이 2020년 Scientific Reports에 실은 논문에서, 호스피스 환자가 의식이 있을 때와 임종 직전 반응이 없어졌을 때 각각 뇌파를 재어 보니, 반응이 없는 환자 다섯 명의 뇌가 건강한 사람과 비슷하게 소리에 반응했습니다. 연구진은 뇌가 소리에 반응했다는 것이지 그 말을 알아듣는지, 누구 목소리인지 아는지는 알 수 없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들린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들리지 않는다고 볼 근거는 더 없다는 뜻입니다. 병동에서 제가 배운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고맙다, 사랑한다

제가 곁에서 들은 인사들은 대체로 짧았습니다. 고마웠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우리 걱정 말고 편히 가라는 말. 길게 준비한 말이 아니라 평소 부르던 호칭으로, 귀 가까이에서, 울면서 한 말들이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환자의 눈가가 젖어 있던 것을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언제 그 말을 해야 하는지는 그 자리의 간호사가 가장 먼저 압니다. 환자가 임종하는 순간까지 곁에 있을 수 있는 의료진은 간호사이고, 저 또한 수치가 달라지는 것을 보고 가족들에게 먼저 다가가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가족들이 제게 되물은 말도 늘 같았습니다. 지금 말해도 들을까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지금 보이는 변화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저는 그 자리에서 답해 드렸습니다. 그 답은 글이 아니라 그 병실의 의료진이 갖고 있습니다.

말을 못 한 채 떠나보낸 분도 있을 겁니다. 곁에 가족이 없던 임종을 저는 여러 번 지켰고,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하겠습니다.

함께 읽을 글: 신규 간호사 버티기, 종양내과 첫해를 지나온 기록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표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어느 간호사의 죽음 이야기
김민경 지음 · 에테르니 · 224쪽

1부 「유명」은 종양내과 병동에서 지킨 임종의 기록입니다. 떠나는 환자와 남겨지는 가족, 그 곁을 마지막까지 지키는 간호사의 시간.

책 소개예스24알라딘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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