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더운 여름날 제가 간호했던 환자는 50대 후반의 남성이었습니다. 말기 간암으로 황달이 심해 얼굴에 누런빛이 감돌았고, 복수 때문에 배가 볼록하게 솟아 몇 걸음만 걸어도 숨을 가쁘게 내쉬었습니다. 2주 넘게 그를 간호했지만 그는 언제나 무표정한 얼굴로 아프니 진통제를 달라고만 했고, 보호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떠났는지, 그리고 같은 병동의 다른 병실에서 본 가족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달랐는지를 적습니다. 임종 순간에 곁에 있었는지보다 그 죽음의 온도를 정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종양내과 병동에서 여러 임종을 지켜본 사람의 눈으로만 씁니다.

목차
- 상태가 안 좋아지면 연락 달라고요
- 마지막 미소를 본 사람이 간호사였습니다
- 임종까지의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 여보, 그랬지
- 죽음의 온도를 정하는 것
- 단 한 사람이면 됩니다
- 이 이야기가 담긴 책
상태가 안 좋아지면 연락 달라고요
간수치가 급격히 오르면서 그는 혼자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몸을 가누지 못해 넘어지기라도 하면 골절과 감염으로 이어져 그것으로 임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분들은 보호자가 상주해야 합니다. 몇 번이고 말씀드렸지만 그는 한 귀로 흘리고 괜찮다고만 했습니다. 며칠이 지나서야 정말 귀찮은 듯 자신에겐 가족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무연고자였습니다.
그런데 환자 정보에 형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도저히 혼자 둘 수 없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동이 불가능하고 언제 의식이 떨어질지 모르니 보호자가 있어야 한다고 전했지만, 형은 올 수 없다고 했습니다. 걱정스러운 기색이 전혀 없는 말투로, 상태가 악화되면 그때 다시 연락을 달라고 했습니다.
네? 상태가 안 좋아지면 연락 달라고요?
54쪽
여기서 상태가 더 악화된다는 것은 죽음밖에 없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 화난 감정을 추슬러야 했습니다.
마지막 미소를 본 사람이 간호사였습니다
그날 저녁, 스테이션에 그의 병실 콜벨이 울렸습니다. 달려가 보니 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방금 콜벨을 누르지 않으셨느냐고 묻자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버튼을 잘못 눌렀다고 했습니다. 간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높아 언제든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는 분이었기에 의식을 확인했는데, 다행히 묻는 말에 정확히 답했습니다. 그러고는 머쓱하게 웃으며 아, 자꾸 왜 이러지, 라고 했습니다. 헛걸음을 시켰다는 미안함에 지어 보인 웃음이었습니다.
그를 간호한 지 20여 일이 지나고서야 처음으로 보게 된 그의 웃는 표정이었다.
53쪽
그 밤에 그의 의식은 완전히 흐려졌고, 다음 날 제가 다시 봤을 때는 산소마스크에 의존한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었습니다. 뒤늦게 가족들이 왔습니다. 의식 없는 그를 바라보며 그제야 안쓰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이제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외로워 보였습니다. 그의 형은 의식 없는 상태가 길어지자 저에게 동생의 임종을 조금 앞당길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혹시 환자에게 들릴까 봐 치료실과의 거리를 가늠하고 목소리를 낮춰, 그건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가족이 아니라 간호사인 내게 마지막 미소를 남긴 채로 임종했다. 그의 마지막 미소를 내가 기억하게 된 것이 괜스레 미안했다.
58쪽
임종까지의 시간은 아무도 모릅니다
병원에서 간호사 한 사람은 열두 명에서 열네 명의 환자를 담당합니다. 그래서 그리도 그날 저녁 그의 병실에 계속 앉아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간호사도 한 환자의 곁을 지키고 앉아 있을 수 없는 곳이 병동입니다. 그리고 상태가 나빠진 뒤 임종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은 환자마다 정말 다릅니다. 누군가는 순식간에 떠나고, 누군가는 분명 의식도 없고 수치도 빠르게 나빠지는데 일주일 넘게, 2주 넘게 그 상태로 있다가 떠납니다. 그 사이 가족들은 오늘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피 마르는 시간을 보냅니다. 그 시간 내내 병실을 비우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합니다.
이 이야기를 적는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임종 순간에 곁에 없었다고 자책하는 가족을 병동에서 여러 번 보았습니다. 그분들이 이 형과 같지 않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 형은 마지막 순간에 늦은 것이 아니라, 동생이 살아 있는 동안 오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여보, 그랬지
같은 병동에 엄마 나이 또래의 환자분이 있었습니다. 어디 불편한 곳이 없는지 물으면 늘 옅은 미소와 함께 답하고, 처치가 끝나면 고마워요, 고생했어요, 라는 인사를 한 번도 생략하지 않던 분이었습니다. 어느 날 혈압이 정상 아래로 떨어졌고, 생리식염수도 승압제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담당 의사가 남편을 치료실 밖으로 불러 하루 이틀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녀의 의식은 온전했습니다. 어지럽고 힘들 텐데도 언제나처럼 내색하지 않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듯 보였습니다. 제가 가까이 다가가자 곁을 지키던 남편이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습니다.
"그래도… 아내가 정말 잘 살아온 것 같아요. 제가 젊을 적에 사업하면서 힘들 때가 많았거든요. 여보, 그랬지? 그 조건에서도 꿋꿋하게 자식들을 훌륭하게 키워냈어요. 저는 아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함께 노력해준 게 정말 고마워요. 정말 잘 살아왔어요."
63쪽

그는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있었습니다. 단둘이 있을 때 직접 말하기에는 쑥스러웠는지 저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아내를 향한 뒤늦은 사랑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진심을 전해 듣고 하루를 채 넘기지 못한 채 평온히 눈을 감았습니다. 죽음이 반드시 허무한 것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저는 그녀를 통해 처음 했습니다.
죽음의 온도를 정하는 것
두 병실은 같은 병동, 같은 복도에 있었습니다. 한쪽에는 마지막 순간에 가족이 와 있었고, 다른 한쪽에도 가족이 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병실에는 아무도 이 사람을 위해 주는 마음이 없는 듯한 삭막함이 감돌았고, 다른 병실은 죽음이 가까이에서 숨 쉬고 있는데도 들어가면 따스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든 것은 마지막 순간에 누가 병실에 있었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두 달 넘게 말기 위암 환자였던 한 사업가의 가족도 그랬습니다. 그가 갑자기 종이컵 한 컵 분량의 피를 토했을 때, 옆에 있던 아들은 놀란 마음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고 아버지, 바깥 공기는 잘 쐬고 오셨어요, 하고 다정하게 말을 건넸습니다. 통증으로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는 동안 그 가족은 서로에게 얼굴 한 번 찡그리는 법 없이 곁을 지켰고, 아내가 손을 어루만지고 있을 때 그는 시한부 환자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환하게 웃었습니다.
'죽어감'의 과정에서 환자를 진심으로 지지해줄 수 있는 것은, 그래도 가족뿐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교과서적인 내용을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가족 중 누군가가 생의 끝자락에 다다를 때쯤에서야 그걸 느끼거나 깨닫곤 한다.
73쪽
죽음의 온도는 그렇게 마지막 며칠, 마지막 몇 달, 그 전의 시간이 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1분에 손을 잡고 있었는지가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누가 어떤 마음으로 곁에 있었는지가 병실의 공기를 만들었습니다.
단 한 사람이면 됩니다
무연고자로 알았던 그분의 임종을 지켜보며 저는 처음으로 생각했습니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나를 진심으로 위하고 진심으로 추억해 줄 사람은 누구일까. 강연에서 이 이야기를 하면서 청중에게 같은 것을 물어보곤 합니다. 그리고 머릿속에 단 한 사람이라도 떠오른다면 그 죽음은 외롭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운 죽음은 너무도 차고 시리다. 삶의 마지막 순간, 진심으로 나를 추억해 줄 누군가가 내 곁을 지켜준다면 그래도 조금이나마 마음 편히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일 필요도 없다. 단 한 명이라도 좋다.
59쪽
임종을 못 지켰다고 자책하는 가족들에게 제가 병동에서 하고 싶었던 말도 이것입니다.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을 이렇게 오래 생각하고, 그날을 되짚고, 잘못한 것이 없는지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에게는 진정으로 추억해 줄 한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분의 죽음의 온도였습니다.
이 이야기가 담긴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