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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두려움, 수많은 임종 곁에서 간호사가 지나온 것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어떻게 지나갈까. 첫 임종 뒤 잠들지 못했던 종양내과 간호사가 숱한 죽음 곁에서 두려움을 극복해 온 과정과 그 끝에 붙잡은 질문을 적었습니다.

밤에 누웠다가 문득 죽음이 무서워져,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지 찾아보신 적이 있나요? 가족이 아프고 나서야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걸 처음 실감하신 분도 있을 겁니다. 저도 오랫동안 죽음을 피하고 싶은 두려운 대상으로 여겼고, 담당 환자의 첫 임종을 본 밤에는 무서워서 잠자리에 들지 못했습니다. 종양내과 병동에서 숱한 죽음을 곁에서 보며 그 두려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책의 문장과 함께 적었고, 글 끝에는 두려움을 안고도 제가 붙잡을 수 있었던 질문들을 옮겨 두었습니다.

겨울 새벽, 비어 있는 병실 침대를 문가에서 바라보는 간호사를 그린 삽화
그 죽음 앞에서 저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습니다.

목차

  1. 잠자리에 들 수 없던 밤
  2. 가족을 또 잃을까 두려웠던 이유
  3. 두려움은 다짐만으로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4. 곁에서 보며 달라진 것
  5. 두려움 대신 붙잡은 질문
  6. 이 이야기가 담긴 책

잠자리에 들 수 없던 밤

신입 간호사 시절, 담당 환자가 처음으로 임종했습니다. 세 자녀의 엄마였고, 얼굴 크기와 맞먹는 산소마스크에 의존해 힘겹게 숨을 쉬고 있었습니다. 그 죽음 앞에서 저는 완전히 무방비한 상태였습니다. 살아 있던 사람이 이렇게 순식간에 죽는다는 것을, 삶과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핏기가 사라져 가는 몸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고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혀야 했는데, 그녀의 죽음을 직시할 자신이 없던 제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열두 시간 넘는 근무를 마치고 나온 그날은 추운 겨울이었고,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미친 사람처럼 한강을 따라 뛰었습니다. 그 길의 이야기는 신규 간호사 버티기, 종양내과 첫해를 지나온 기록에 따로 적었습니다. 기숙사 주변을 맴돌다 방으로 돌아온 뒤에도 저는 눕지 못했습니다.

피곤했지만 잠들고 싶지 않았다. 잠들어봐야 어차피 병원 꿈을 꿀 게 분명했다. ‘죽으면 평생 잠만 잘 텐데.’라는 어린아이 같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생생한 죽음의 잔상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에 무서워서 잠자리에 들 수 없던 게 더 정확하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12쪽

가족을 또 잃을까 두려웠던 이유

그 첫 임종을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까닭을 저는 책의 프롤로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에게는 죽음에 대해 슬픈 기억이 있어 죽음은 꼭 피하고 싶었던, 실로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내가 죽음과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일하게 되리라고는 살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다. 9쪽

저는 다섯 살에 아빠를 잃었습니다. 아빠 무릎에 앉아 장난치던 느낌은 아직도 제 안에 남아 있지만, 캄캄한 새벽녘 누군가 저를 태우고 간 장례식장의 기억 이후로 아빠는 없었습니다. 남은 것은 슬프고 힘들어하는 엄마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부재로 어린 시절의 삶은 너무나 버겁고 힘들었고, 그래서 저는 죽음이라는 단어를 어떻게든 외면하고 회피하며 살아왔습니다.

특히나 가족의 죽음을 또 경험하게 될까봐 나는 너무도 두려웠다. 차라리 내 인생에 어느 누구의 죽음도 찾아오지 않을 거란 착각에 빠져서 살고 싶었다. 105~106쪽

그런 제가 가장 두려워해서 가장 외면하고 싶었던 것을 직접 눈으로 보고 다뤄야만 하는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죽음을 직시한 날 한강을 미친 사람처럼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았고, 도대체 왜 나를 이 상황으로 몰고 왔느냐고 하늘에 대고 묻고 따지기도 했습니다.

두려움은 다짐만으로 극복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죽음을 보는 일에 적응해 갔습니다. 환자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 가능해졌고,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환자의 죽음이 더는 슬픈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임종이 가까워져 오는 환자의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담담하게 전할 줄도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는 제 감정과 생각이 죽음 앞에서 점점 무뎌져 갔다고 적었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만 해도 간호사들 고생하는데 음료수라도 사 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암은 의료진의 예상보다 너무 빨리 진행되었고, 그는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을 한 채 보호자의 이름을 거듭 불렀지만 무어라 말을 덧붙이지는 못했습니다. 제가 간호한 다음 날 출근해 보니 그가 있던 병실 앞 이름표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죽음이 내게 찾아 들었을 때, 나는 두려움에 벌벌 떠는 모습이 되고 싶지 않다.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 서려 있던 것처럼 나는 결코 그런 모습이 되고 싶지 않다. 내 의식과 무의식에 존재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그 순간 나를 지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2쪽

병동에서 만난 많은 암 환자들은 죽음이 자신의 사정권에 들어왔을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그것을 직시했고, 그제야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워 보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런 환자들을 지켜보며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죽음을 앞둔 많은 환자를 지켜본 결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그렇게 짧은 시간의 생각과 다짐으로 극복해내기엔 버거운 존재임이 분명하다. 25쪽

그래서인지 죽음을 하나의 현실 정도로 받아들인 분들은 제 기억에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습니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다 빠지고, 종양이 후두 신경을 침범해 목소리가 늘 쉬어 있던 말기 암 환자 한 분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옆 환자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이미 내려진 선고는 받아들이는 거죠. 어찌 되었건 살아있는 동안엔 행복해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25쪽

그는 새벽이면 일어나 병원 복도를 걸으며 운동을 했고, 누군가 힘들어하면 그를 포용할 여유까지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얼마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는 그에게 중요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곁에서 보며 달라진 것

그 병동에 꾸역꾸역 두 발을 담그고 있다 보니 죽음은 어느 순간부터 제게 현실이 되어 있었습니다. 환자들의 죽음을 보고 만지고 다루면서, 저는 그것을 피부로 가슴으로 느끼는 간호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빠의 죽음 때문일지는 몰라도 임종을 앞둔 환자의 가족들에게 자연스레 마음이 이입되었고,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충분히 나눌 수 있도록 곁에서 격려하는 일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여겼습니다. 그 인사들은 임종 전 마지막 말, 간호사가 곁에서 들은 따뜻한 인사에 적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암 환자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죽음이 더는 나 자신과 별개의 존재가 아닌 것 또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는 드디어 아빠의 죽음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108쪽

아빠도, 제가 간호했던 환자들도 아주 별난 운명을 지닌 사람들이라서 죽음을 맞이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각자 나름의 삶을 살아가던, 저와 같은 보통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은 누구나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렇게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되기까지 20년도 넘게 걸렸습니다.

안타까웠던 것은 제가 그랬듯이 많은 이들이 죽음이 실제로 시야 안으로 들어와야 비로소 죽음을 자각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죽음의 당사자는 충격과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힘겨워하다 임종하는 경우가 많았고, 보호자 역시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든 세상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가족의 죽음을 마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두려움 대신 붙잡은 질문

이런 이야기를 꺼내면 이렇게 묻는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직 젊고 건강한데 ‘죽는다.’라는 것에 대해 벌써부터 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느냐며 누군가는 의아해할지 모르겠다. 104쪽

책에서 저는 결국 같은 이야기라고 답했습니다. 죽음을 먼저 내밀하게 들여다본 뒤에 삶을 다시 바라보자는, 순서의 차이일 뿐이라고요. 숱한 죽음을 지켜보며 저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살아 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하는 질문을 수없이 품었고, 더 나아가 남은 제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답을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런 질문도 던졌습니다.

만약 단 한 번만이라도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고 싶고 우리 엄마는 어디에서 어떻게 세상을 떠나고 싶은지에 대해 가족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다면 어떨까. 109쪽

미리 이야기해 둔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이 병동에서 어떻게 달랐는지는 연명치료 거부, 결정을 앞둔 가족에게 간호사가 본 것에 적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답을 알진 못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나를 포함한 모두가 살아 있는 동안 평생 풀어야 할 숙제일 것이다. 110쪽

다만 제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 사람인지조차 제대로 모른 채 삶을 흘려보내기엔 너무 아깝다는 것만은 분명했습니다.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뒤늦게 후회하기에도 하루는 너무 소중했습니다. 가족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갑작스럽게 떠난 아빠를 생각해서라도, 저는 적어도 후회하는 삶은 살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죽음이 가까워져 올 때 그것마저 자연스러운 우리 삶의 일부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반대로 삶을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더욱 치열하게 고민해보기로 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생각하기로 했다.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격한 고마움을 간직하며, 죽음을 실천하며 살기로 했다. 111쪽

함께 읽을 글: 임종 못 지킨 죄책감, 병동에서 본 두 가족의 마지막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표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어느 간호사의 죽음 이야기
김민경 지음 · 에테르니 · 224쪽

프롤로그(9~13쪽), 「어디까지가 살아있다는 것일까」,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기를」과 1부 마지막 장 「죽음, 두려워하지 말 것」(104~111쪽). 이 글의 문장들이 있는 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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