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비슷한 만큼 답답해요. 지금 아픈 거는 2점. 그거 말곤 괜찮아요." 불편한 점이 있냐고 물으면 이렇게 답하며 머쓱하게 웃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식도암을 진단받은 지 고작 3개월이었습니다. 걸어서 입원했고, 진통제를 놓아 드리면 늘 진심으로 고맙다고 인사하던 분이었습니다. 누나가 곁을 지켰는데, 간호사들 고생하는데 음료수라도 드려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는 말을 동료에게 전해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병원에서 어떻게 오는지를 적습니다. 그 순간을 미리 이야기해 둔 가족과 그렇지 않은 가족이 어떻게 갈리는지를 저는 종양내과 병동에서 여러 번 보았습니다.
목차
허공을 바라보며 그렇게 그는 살아있었다
항암제를 시작했지만 종양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설상가상으로 부작용 때문에 온몸이 수포로 뒤덮여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팔은 빨갛게 익어 버렸고 다리는 터질 듯이 부었습니다. 약물을 당분간 중단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고, 한쪽 팔의 부기가 조금씩 빠지면서 안도감을 느끼려던 찰나였을까요. 이번에는 통증이 그를 뒤덮었습니다. 침대가 휘청거릴 만큼의 발작적인 몸짓과 함께 거친 숨을 내쉬며 그는 고통을 토해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통증을 점수로 표현하며 진통제를 가져다주길 원했던 그가, 이제는 앓는 소리와 잔뜩 짓이겨진 미간으로만 통증을 표현하고 있었습니다.
의료진의 예상보다 암의 진행 속도가 너무도 빨랐습니다. 고작 며칠 사이에 더는 항암제를 쓸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의식도 명료하지 않았습니다. 눈을 뜨면 허공만을 바라볼 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보호자가 잠든 사이, 그는 위에 직접 구멍을 뚫어 삽입한 위루관을 자신의 손으로 잡아 빼 버렸습니다. 그런 발작적인 움직임은 이후에도 계속되었고, 보호자에게 동의서를 받고 나서 어쩔 수 없이 억제대를 사용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양손과 양발이 침대 난간에 묶인 채로 그가 누워있었다.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발작 증상으로 몸을 뒤틀고 거칠게 숨을 내쉬기를 반복했다. 허공을 바라보며 그렇게 그는 살아있었다.
19쪽
새벽녘, 그의 혈압이 정상 수치 미만으로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승압제가 꽤 높은 용량으로 계속 투약되고 있었는데도 수치는 계속 떨어졌고, 당직 의사는 약물 용량을 두 배로 늘리자는 처방을 내렸습니다. 그 약물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저로선 도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턱걸이하듯 유지되는 혈압이 아직은 그가 생물학적으로 살아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전적으로 약에 의존하고 있는 생이었습니다.
과연 나라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가래를 빼낼 때마다 몸부림치는 그를 보면서, 제가 하는 이 행위가 과연 환자를 위한 것인지 헷갈렸습니다. 초점 없이 헤매는 그의 시선을 볼 때면 제 목소리를 듣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눈앞에 있는 그는 상식적인 범주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보고 있자니 살아있는 게 오히려 고통스러울 것만 같았다. 물론 보호자는 이렇게라도 그가 살아있기를 바라며 붙잡고 싶겠지만, 과연 나라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지 생각해 볼 문제였다.
20쪽
그날 밤에는 그가 힘겨운 모습으로 살아있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퇴근했고, 이튿날 출근해 보니 그가 입원 중이던 병실 앞 이름표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아, 떠났구나.
나중에 책을 읽다가 이런 상태를 철학적 죽음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니 생물학적으로는 살아 있지만,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내가 나인 것도 모른 채 누워 있는 상태. 그의 가족은 그 밤에 그가 살아 있기를 바랐고, 의료진은 승압제 용량을 올렸습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가 무엇을 원했을지는 아무도 묻지 못한 채였습니다. 연명치료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그렇게, 환자 본인이 답할 수 없게 된 뒤에야 가족 앞에 놓이는 질문이었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교수님
그 질문이 놓이는 순간을 저는 여러 번 보았습니다.
누구에게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연명치료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그 순간, 한 번이라도 가족끼리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본 집과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집은 정말 갈립니다. 이야기해 본 적 없는 가족들은 다 당황합니다. 뭐가 맞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살려만 주세요, 교수님. 살려만 주세요.
그렇게 결정이 지연되는 동안 의료진은 어쩔 수 없이 연명치료를 시작합니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기관 삽관을 합니다. 심폐소생술을 하다 보면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지고, 삽관도 굉장히 힘든 과정입니다. 그런데 말기입니다. 그렇게 해서 심장이 다시 뛴다고 해도 이미 철학적 죽음을 맞이한 상태라면, 그 연명치료에 의미가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답할 것입니다. 제가 곁에서 본 바로는 크게 의미가 있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의 고통을 느끼게 하지 않고 편안하게 보내 드리는 것이 더 나은 결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저는 병동에서 많이 했습니다.
서류는 공란으로 남겨져 있었다
다른 병실에는 병원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던 분이 있었습니다. 물도 못 먹게 하고, 몸에서 냄새도 나는 것 같고, 아주 미쳐 버리겠으니 제발 나가게 해 달라고 거친 숨소리에 섞어 말하던 분입니다. 이틀 전, 담당 의사가 보호자에게 그녀의 연명 의료 계획서에 대해 설명하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서류에 사인한다는 건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등을 포함한 연명 의료 행위를 모두 받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더는 적극적인 치료 행위가 그녀에게 의미 없다는 의료진의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아직 가족들끼리 상의가 안 된 상태로 서류는 공란으로 남겨져 있었다.
46쪽

그녀는 병원 밖을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냉정하게 말해, 늦기 전에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확인하여 동의서를 받는 것이 의료진에게 더 우선인 경우가 많습니다. 병원에 입원한다고 해서 결코 모든 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져 오는 시점에서조차 그렇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많은 이들이 남은 삶을 병원에서 무기력하게 보내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지 않는 모습으로 생을 마감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표정을 보며 저는 가족들에게 어머니가 삶을 어디에서 어떻게 정리하고 싶어 하시는지 대화를 나누어 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사실은 그 상의가 이미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정 앞에서 갈리는 것
병원에서 가족이 받게 되는 서류는 두 가지입니다. 환자 본인이 미리 뜻을 남겨 두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임종 과정에 들어섰을 때 의료진이 작성하는 연명의료계획서. 앞의 것은 열아홉 살 이상이면 누구나 등록기관에서 미리 작성할 수 있고, 절차와 가까운 기관은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에 있습니다. 저는 절차를 안내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여기까지만 적습니다.
제가 곁에서 본 것은 서류보다 앞에 있는 일입니다. 서류에 사인하기 전에, 가족이 그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해 보았는가. 그것이 병원에서 정말 갈리는 지점이었습니다. 이야기를 해 본 가족은 서류 앞에서 울어도 서명을 했고, 해 보지 않은 가족은 서류를 공란으로 둔 채 살려만 달라고 했습니다. 어느 쪽이 옳다는 말이 아닙니다. 다만 앞의 가족은 환자가 무엇을 원했는지를 알고 있었고, 뒤의 가족은 그것을 영영 물을 수 없게 된 뒤였습니다. 밥 먹으면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많이 어렵습니다. 부모와 함께 죽음을 논하는 건 유서 깊은 금기를 논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나는 당신이 당장 오늘 저녁에라도 가족들과 함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 볼 수 있길 바란다. 물론 쉽지 않은 이야기란 것쯤은 나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쉬쉬하기엔 죽음의 여운과 잔상은 생각 이상으로 강렬하다. 최소한 당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죽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는 가족들끼리 한 번쯤 꼭 해보길 바란다. 마찬가지로 부모님 또한 어디에서 어떻게 죽고 싶어 하시는지도 알고 있길 바란다.
48~49쪽
병동에서 그 순간을 지켜본 뒤 제가 청중에게 늘 권하는 문장은 하나입니다. "혹시 어떤 사고가 생겨서 연명치료를 할지 말지 결정해야 할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우리 한번 생각해 볼까." 답을 정하는 자리가 아니라 묻는 자리면 충분합니다. 그 한 번이 있었던 가족과 없었던 가족이 병원에서 어떻게 달랐는지를, 저는 잊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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