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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간호사 버티기, 종양내과 첫해를 지나온 기록

신규 간호사 버티기가 힘든 밤에 읽었으면 하는 기록. 첫 임종 뒤 한강을 달리던 밤부터 불도 켜지 못하고 울던 날, 종양내과 첫해를 지나며 배운 것까지 적었습니다.

신입 때 담당 환자의 죽음을 처음 보았습니다. 세 아이의 엄마였고, 얼굴만 한 산소마스크에 의지해 간신히 숨을 쉬던 분이었습니다. 몇 시간 뒤 숨이 멎은 환자의 몸은 점점 굳어 갔습니다. 새 환자복으로 갈아입히려면 그 몸을 아무렇지 않게 만져야 했는데, 제 시선은 자꾸만 다른 곳으로 향했습니다. 차마 그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이후에도 죽음은 종양내과 병동에서 반복되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는 간호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과연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쉽게 답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다음 근무가 오면 다시 병동으로 향했고, 환자의 이름을 부르고, 불편한 곳을 살피고,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하루가 쌓여 첫해가 되었습니다.

목차

  1. 미친 사람처럼 한강을 따라 뛰었다
  2. 너 그렇게 걸어 다녀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3.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침대에 앉아
  4. 오늘만 같으면 평생도 일하겠어
  5. 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호사
  6. 버틴 것도, 병동을 떠난 것도 내 선택이었다
  7. 부디 내 몸이 잘 견뎌주면 좋겠다
  8.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미친 사람처럼 한강을 따라 뛰었다

첫 임종을 마주한 그날도 열두 시간이 넘도록 일했습니다. 병원 밖으로 나오니 추운 겨울밤이었고, 싸락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머릿속에는 좀 전에 본 환자의 모습이 계속 떠올랐습니다. 기숙사로 돌아가 그대로 잠들 자신이 없었습니다. 잠이 들면 병원 꿈을 꿀 것 같았고, 무엇보다 주검의 잔상이 아직 너무 선명했습니다.

때마침 내리던 싸락눈을 가로질러 나는 미친 사람처럼 한강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본능적인 충동 때문이었을 테다. 10쪽

얼마나 달렸는지는 기억나지 않습니다.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세게 뛰는 동안만큼은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달리고 기숙사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잠들 수는 없었습니다.

간호사가 된 뒤 처음으로 죽음을 가까이에서 보았고, 바로 다음 날부터는 다시 다른 환자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슬퍼할 시간을 따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다음 근무표에 제 이름이 있었고, 그날이 오면 다시 출근했습니다.

첫 임종을 겪은 뒤 한강변을 달리는 신규 간호사 삽화
첫 임종을 겪은 뒤 잠들 수 없어 한강변을 달리던 밤.

너 그렇게 걸어 다녀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병동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간호사 한 명이 열 명이 넘는 환자를 담당하곤 했습니다. 그중 중환자가 몇 명인지에 따라 하루의 무게가 달라졌습니다. 여러 환자의 요구를 동시에 들으면서 처방을 수행하고, 작은 상태 변화를 놓치지 않아야 했습니다. 병원 은어로 ‘터졌다’고 부르는 응급 상황이 생기면 그 순간부터 모든 일의 순서가 뒤바뀌었습니다.

신규 간호사 시절, 느린 걸음으로 병동을 오가는 저를 보고 한 선배 간호사가 말했습니다.

너 그렇게 걸어 다녀서 제대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 190쪽

일하다 보니 그 말이 백 번이고 맞는 말이었습니다. 보통의 걸음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있는 업무가 아니었습니다. 느렸던 걸음은 자연스럽게 빨라졌고, 일이 끝나면 다리가 퉁퉁 부어올랐습니다.

중환자를 여럿 담당하는 날에는 이따금 눈물이 고이곤 했습니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혼자서 제시간에 할 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동료가 도와준다면 좋겠지만, 누구 하나 다른 사람을 도울 여력이 없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들도 저와 같이 힘들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쁠 때면 화장실 갈 시간도 없었습니다. 참을 만큼 참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겨우 틈을 냈습니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이 환자 저 환자 사이를 오가도 해야 할 일은 좀처럼 줄지 않았습니다. 그 와중에 환자들의 요구를 찬찬히 듣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습니다.

불을 켜지 않은 채로 침대에 앉아

이브닝 근무가 끝나면 보통 자정을 넘겼습니다. 병원을 나서면서 맞이하는 바깥공기는 항상 차분했습니다. 가라앉은 밤공기를 밀쳐 내듯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어느덧 제 퇴근길 습관이 되었습니다.

숨 쉴 틈 없이 일했던 날일수록 밤하늘 어딘가에 있는 달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말았습니다. 은백색의 빛을 내는 달은 그날 제가 본 것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습니다. 생사의 경계에 서 있는 환자들과 보낸 하루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습니다. 달빛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그 잠깐의 여유가 좋았습니다.

그러나 달을 보며 위안받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 날도 있었습니다.

터벅터벅 땅을 보며 집에 들어와 현관문을 닫는 순간부터, 눈물이 차오르고 울음이 터져 나오는 그런 날이다. 불을 켜지도 않은 채로 침대에 앉아 엉엉 울어버리고 마는 그런 날. 172쪽

하루 동안 몇 번이고 참았던 눈물을 모두 쏟아내는 데에는 삼십 분쯤 걸렸습니다. 그렇게 울고 나면 그때야 가슴이 조금 시원했습니다. 그리고 스탠드를 켜고 책상 앞에 앉아 일 년 전에 써 둔 일기를 꺼내 읽었습니다.

그 일기에는 나의 부족함을 매일 마주하고, 스스로 간호사를 할 자격이 있는지 수십 차례 물으면서도 ‘버텨내는 것까지가 재능이다’라는 말로 오늘까지 왔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벚꽃이 지던 사월에 사 둔 봄 재킷을 몇 번 입지도 못한 채 다시 여름을 맞았을 때, 저는 제게 말했습니다. 잘 견뎌 내 주어 고맙다고. 이렇게 또 한 번의 여름을 맞아 주어서 진짜 고맙다고.

근무를 마치고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홀로 우는 신규 간호사 삽화
불도 켜지 않은 채 침대에 앉아 한참을 울던 밤.

오늘만 같으면 평생도 일하겠어

오랜만에 동료들과 점심을 먹던 날, 한 선배 간호사가 우스갯소리로 말했습니다.

오늘만 같으면 평생도 일하겠어. 196쪽

그날은 갑작스러운 상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중환자도, 곧 임종할 것 같은 환자도 없었습니다. 시간대별 업무가 한꺼번에 몰려 있지도 않았습니다. 평소처럼 한껏 긴장한 채 무표정으로 일할 필요가 없는 날. 오랜만에 얼굴 근육이 자유를 즐기고, 환자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날이었습니다.

반대로 정신없이 바쁜 날에는 아무것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발등에 떨어지는 일을 가지 치듯 빠르고 기계적으로 쳐내야 했습니다. 산소포화도 알람과 수액 기계의 알람, 콜벨과 전화벨이 한꺼번에 울리면 병동은 시장통처럼 변했습니다. 환자가 무언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졌고, 뒤늦게 찾아갈 때면 “죄송합니다”라는 말부터 해야 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간호사가 모든 환자를 마음을 담아 간호하는 것, 그것은 미안하지만 정말 욕심이다. 200쪽

저는 병원에서 신뢰받는 간호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신뢰는 의학 지식이 많거나 손이 빠르다는 이유만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눈빛과 표정과 목소리를 살피며 한 사람으로 마주할 여유가 있어야 했습니다.

그 여유는 늘 제 의지만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날에는 허락되었고 어떤 날에는 십 분 만에 깨져 버렸습니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마음을 다하지 못한 날의 저를 조금은 덜 몰아세울 수 있었습니다.

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호사

어느 여름날, 동료 간호사가 제 담당 환자의 병실에 다녀오더니 저를 불렀습니다. 환자가 뭐라고 말하는데 알아들을 수 없었다며 의식이 괜찮은지 확인해 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환자는 입원할 때만 해도 의식이 또렷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극에 반응하지 않게 된 분이었습니다. 이름을 몇 번이고 불러도 허공만 바라보며 눈을 깜빡일 뿐이었습니다. 저는 그분이 다시 깨어나기를 바라며 나이트 근무 때마다 해가 뜰 무렵 병실로 향했습니다. 보호자와 함께 기저귀를 갈고, 입안에 고인 가래를 빼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없는 작은 일들을 대신하며 혹시나 상태가 달라지지 않는지 유심히 살폈습니다.

다행히 이틀 전부터 의식이 돌아온 상태였지만, 언제 다시 나빠질지 알 수 없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병실에 들어가 이름과 날짜, 지금 있는 장소를 물었습니다. 모두 정확히 답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알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간호사. 179쪽

그분은 저를 바라보며 제 이름 석 자까지 덤덤하게 말했습니다. 지쳐서 무표정으로 일하고 있던 저는 그 말에 순식간에 와르르 녹아 버렸습니다. 보상받기 위해 한 간호는 아니었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안에 따뜻한 온기가 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 나도 누군가에게는 가장 마음이 가는 간호사구나.

눈에 잘 띄지 않는 작은 돌봄이 그분에게 닿았다는 사실이 기뻤습니다. 신규 때에는 이런 날이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실수하지 않기 위해, 다음 근무를 무사히 마치기 위해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러다 이렇게 예측하지 못한 말 한마디가 다시 일할 힘을 주기도 했습니다.

버틴 것도, 병동을 떠난 것도 내 선택이었다

일을 시작하고 일 년이 되었을 때, 저는 일기에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깨달았다고 적었습니다. 나의 한계를 마주하며 이겨 내는 방법을 배웠고, 숱한 실수로 작아진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길렀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지닌 힘과 사람을 위하는 마음의 가치도 그곳에서 배웠습니다.

그 시절에는 이 길을 계속 걸어 보기로 했습니다. 간호학과를 선택한 것도, 병원에 들어온 것도 제 결정이었고, 그곳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조금 더 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병동에 있지 않습니다. 그때 버틴 일도, 나중에 병동을 떠난 일도 모두 제 선택이었습니다.

부디 내 몸이 잘 견뎌주면 좋겠다

나이트 근무를 위해 오후 여섯 시에 눈을 뜬 어느 날이었습니다. 데이 근무를 끝내고 돌아온 룸메이트가, 같은 병동의 연차 높은 간호사가 최근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 암 진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함께 일하던 간호사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동료는 마음이 싱숭생숭해 보였습니다. 그건 저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불규칙한 삼교대와 높은 업무 강도, 밥 먹을 시간을 내는 것조차 힘든 환경에서 누군가를 돌보다 오히려 내가 병을 얻게 되는 일은 정말 비극이지 않은가. 당시 나이트 근무만 전담하고 있던 저는 혹시 지속되는 밤샘 근무가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운동 강습을 듣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자유로운 시간에 쓸 수 있는 요가 강습 20회 쿠폰을 샀습니다. 불규칙한 생활을 하던 제게는 단비 같은 쿠폰제도였습니다.

부디 내 몸이 잘 견뎌주면 좋겠다. 당신의 몸 또한 잘 견뎌내 주기를 바란다. 188쪽

이 글에 적은 장면들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의 2부에 있습니다. 신규 시절의 낮과 밤을 먼저 읽고 싶다면 2부부터 펼쳐도 괜찮습니다. 제가 처음 간호학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간호학과를 고른 이유에 적었습니다.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표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어느 간호사의 죽음 이야기
김민경 지음 · 에테르니 · 224쪽

1부는 종양내과 병동에서 지킨 임종의 기록이고, 2부는 그 사람들의 낮과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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