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봄, 한 고등학교에서 강연을 마치고 학생들이 적어 둔 질문지를 받았습니다. 그중에 이런 질문이 있었습니다. 임종하신 분의 가족이나 지인을 마주할 때 어떤 감정이 들고, 어떻게 위로해 드리면 좋을지 궁금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은 질문과 답을 합쳐 10분밖에 없어서 짧게 답하고 넘어갔는데, 그 뒤로도 이 질문이 남았습니다. 이 글은 그날의 답을 다시 적은 것입니다. 위로 문구를 모아 둔 글이 아닙니다. 종양내과 병동에서 여러 가족의 곁에 있었던 사람이 무엇이 위로가 되고 무엇이 되지 않았는지 본 것만 적습니다.
목차
처음에는 위로가 부담이었습니다
솔직하게 적으면, 신입 시절 저에게 가족을 위로하는 일은 피하고 싶은 일이었습니다. 담당 환자의 임종 자체가 가장 두려운 순간이었고, 환자와 저 사이에 미리 선을 긋는 연습을 해 보기도 했지만 잘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가족들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은 제 역량 밖의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나의 감정 소진을 방어하기 위해 환자와 나 사이에 미리 선을 긋는 연습을 해보기도 했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 와중에 그의 가족들까지 위로해야 한다는 건 부족한 역량으로는 정말 부담스러운 상황임이 틀림없었다.
94쪽
그러니 이 글도 위로가 쉽다는 전제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못 했습니다.
첫 임종의 밤, 하지 못한 말
트레이닝을 마치고 처음으로 혼자 열네 명의 환자를 맡았던 나이트 근무였습니다. 출근 전 환자 파악을 하다가 한 분의 기록지에서 멈췄습니다. 낮에 담당 교수가 보호자들에게 하루 이틀 안에 임종하실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말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50대 중반의 여성 환자분이었고, 당시 저희 어머니 나이 또래였습니다. 얼굴 전체를 덮는 산소마스크에 기대어 거친 숨을 쉬고 계셨습니다.
새벽 두세 시쯤 약을 조제하고 있는데 그분 병실에서 알람이 울렸습니다. 산소포화도가 70퍼센트대로 떨어져 있었고 혈압도 낮았습니다. 2인실이라 옆 환자분이 계셔서 치료실로 옮겼고, 네 시 반쯤 임종하셨습니다.
그 밤에 제가 하지 못한 일이 있습니다. 보호자분들께 지금 임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귀 가까이에서 전하시라고 말씀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연차가 조금이라도 있는 간호사라면 그 시간을 마련해 드렸을 텐데, 저는 그것을 해야 한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뒤늦게 선배 간호사가 그 역할을 대신해 주었습니다. 그 가족분들께는 지금도 죄송한 마음이 남아 있습니다.

위로하려는 마음이 욕심이 될 때
학생의 질문에 그날 제가 먼저 한 말은 이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유족을 마주하면 어떻게든 말로 위로해 주고 싶어 하고, 그분의 감정을 어떻게든 덜어 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그 마음은 사실 욕심에 가깝습니다.
병동에서 여러 번 본 것이 있습니다. 큰 위로를 해 드리고 싶은 마음이 앞설수록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는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잘되지 않습니다. 그 사실을 먼저 받아들이는 편이 맞았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건 누구에게나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환자에게 곧 죽음이 닥쳐오리란 것을 알면서도, 그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봐야 하는 과정과 현실은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89쪽
병동에서 위로가 된 것
그렇다면 무엇이 위로가 되었는지 적어 보겠습니다.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그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정말 힘드시겠다는 말 한마디로, 지금 느끼시는 슬픔과 두려움이 당연한 것이라고 알려 드리는 일입니다. 감정을 고쳐 주려 하지 않고 그냥 품어 드리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곁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큰 위로가 되는 것을 병동에서 보았습니다. 마음은 말보다 그렇게 전달됐습니다.
책에 적어 둔 한 가족이 있습니다. 40도가 넘는 고열이 며칠째 이어지던 50대 초반의 남성 환자분이었고, 모니터 알람이 울릴 때마다 가족들은 화들짝 놀라 간호사를 찾았습니다. 병실에 들어설 때마다 가족들 사이의 긴장감이 저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나는 그래서 부디 환자가 임종하는 과정이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덜 두렵게 느껴지기를,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내려 두고 임종을 함께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랐다. 환자와 이별하는 순간을 잘 간직할 수 있길 바라면서 말이다.
89쪽
그 가족이 마지막에 어떤 인사를 건넸는지는 임종 전에 어떤 인사를 해야 하나요에 따로 적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순간까지 제가 가족들 곁에서 하려고 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만 남겨 둡니다. 환자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먼저 치우고, 가족들이 놀라지 않도록 상태를 설명하고, 병실에 있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는 이제 가족들의 심정을 헤아리고 다독이며 때로는 안아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94쪽
고생 많으셨어요
책을 다시 읽어 보면 제가 가족들에게 건넨 말은 대개 한 가지였습니다. 고생 많으셨다는 말입니다. 2부 프롤로그에 병동의 하루하루를 한 줄씩 적어 둔 대목이 있는데, 거기에도 그날이 한 줄로 있습니다.
배우자의 임종을 맞이한 어머님의 손을 꼬옥 붙잡으며 "수고 많으셨어요." 위로를 건넸던 하루.
120쪽
말은 그것뿐이었습니다.

학생에게 답한 것
질문지의 앞부분, 어떤 감정이 드느냐는 질문에도 답해야겠습니다. 놀란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가족들을 볼 때 저도 안쓰러웠습니다.
어떻게 위로해 드리면 좋을지에 대해서는 그날 이렇게 답했습니다. 어떤 위로도 잘되지 않는 상황이라는 것을 먼저 인정하고, 그분의 감정을 고쳐 주려 하지 말고 인정해 주고, 차분하게 곁을 지키는 것. 너무 큰 위로를 하려고 애쓰지 않는 것. 그러면 마음은 자연스럽게 전달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날 강연장에서는 여기까지만 말했습니다. 책에는 그 뒤에 이어지는 문장을 적어 두었습니다.
환자가 임종하는 순간까지 곁에 있을 수 있는 의료진은 간호사다. 그렇기에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 또한, 간호사다. 만약 간호사가 환자의 임종과정에 진심을 담아 함께한다면 가족들이 환자와 이별하는 순간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마음으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나와 함께 했던 환자의 가족들이, 환자를 떠나보낸 마지막 순간을 따뜻하게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94~95쪽
관련 글: 임종 못 지킨 죄책감, 병동에서 본 두 가족의 마지막 · 간호사 현실, 간호학과 지망생 질문에 솔직하게 답한 것
이 이야기가 담긴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