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여름, 한 고등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온 학생들을 만났습니다. 질문지를 미리 받아 두었는데 "간호사를 추천하시나요?"부터 "일을 시작하고 1년 동안 무엇이 가장 큰 성장통이었나요?"까지, 제가 고등학생 때 현장에서 일하는 간호사에게 묻고 싶었지만 물을 사람이 없었던 질문들이 그대로 적혀 있었습니다. 이 글은 그날 답한 것을 다시 정리한 기록입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추천하는지, 첫해에 무엇이 힘든지, 한계는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AI 시대에도 남는 것은 무엇인지를 종양내과 병동에서 일한 사람의 경험으로만 적습니다.

목차
-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 욕을 정말 많이 먹게 됩니다
- 슬픔을 드러내면 유별난 사람이 되는 곳
-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면
- 처방이 없으면 진통제 하나도
- AI 시대에도 남는 것
-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습니다
강연이 끝나 갈 무렵 한 학생이 손을 들었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을 추천하시냐고 물었습니다. 솔직하게 답하면 무조건 추천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 개인의 성향과 잘 맞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대형병원 간호사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내게 세 가지 질문을 했다. "힘들지 않아요?", "진짜 태움 문화가 있어요?", "3교대 근무 만만치 않죠?"
208쪽
병원에 입사하는 신입 간호사 중에는 등 떠밀려 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이 일을 정말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깊이 고민해 보지 않고, 취업이 잘된다니까 간호학과에 가고 다들 가니까 병원에 가는 경우입니다. 그러다가 크게 다치는 분들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몸이 다치기도 하고 마음이 다치기도 했고, 퇴사가 아주 빨랐습니다. 학생들이 적어 낸 지원 동기 중에도 "엄마가 간호학과 가래요"가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가라고 해서 가는 것이라면 저는 권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가면 어차피 금방 그만두게 되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요즘은 간호사가 실제로 어떻게 일하는지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많으니, 충분히 살펴본 뒤에 나만의 이유로 한번 해 보겠다고 정했다면 그 시간만큼은 충실하게 해 보면 좋겠다고요. 6개월이든 1년이든 3년이든, 그 시간에 최선을 다한 사람은 이 길을 계속 갈지 여기서 멈추고 다른 길로 틀지를 자신 있게 고를 수 있습니다. 나만의 이유 없이 버티다 보면 다음 선택을 해야 할 때 "간호사 경력 1년밖에 없는데 이제 뭘 하지"라는 혼란으로 빠지는 것도 보았습니다.
저 자신에게 묻는다면 다시 돌아가도 간호학과에 갈 것이고, 같은 병원 종양내과 병동에서 암 환자분들을 진심을 다해 간호할 것입니다. 그 경험을 하게 해 준 것이 지금도 감사합니다.
욕을 정말 많이 먹게 됩니다
일을 시작하고 1년 동안 무엇이 가장 큰 성장통이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욕을 정말 많이 먹게 됩니다.
병원은 의료진이 잘못하면 환자가 응급 상황에 빠질 수 있는 곳이라 모두가 예민한 상태로 일합니다. 실습 때는 실수가 어느 정도 용납되지만, 독립해서 수십 명의 환자를 담당하게 되면 커다란 실수는 해서는 안 됩니다. 늘 긴장하고 늘 공부해야 하는데, 그래도 내 의도와 다르게 실수하는 경우는 생깁니다. 업무 환경이 좋다면 서로 이해해 주고 다시 알려 주겠지만, 제가 겪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 안에서는 그런 환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욕을 많이 먹고, 내가 쓰레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신입 간호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때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나라는 사람과 내가 실수한 행위를 분리하는 것입니다. 선배 간호사나 다른 의료진이 내 실수에 부정적인 피드백을 했을 때, 그 피드백이 곧 내가 아니라는 것을 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의료 현장에 뛰어들 것이라면 나를 돌볼 수 있는 힘을 꼭 배우고 갔으면 좋겠고, 가서도 그럴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스트레스 관리가 안 되면 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고, 하면서도 마음이든 몸이든 많이 다치게 됩니다.
짧다면 짧은 일 년이란 시간 동안 알게 모르게 나는 분명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나의 '한계'를 마주하며 이겨내는 방법을 배우고 숱한 실수로부터 작아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을 길렀다.
175쪽
한 가지 더 말했습니다. 실수했을 때 거짓말로 피하지 않는 것입니다. "너 이거 봤었어?"라는 물음에 혼날까 봐 "못 봤는데요"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봤는데 미처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는 쪽이 맞습니다. 현장에서 윤리적으로 가장 중요한 역량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정직함이라고 답합니다.
슬픔을 드러내면 유별난 사람이 되는 곳
계속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던 환자분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느냐는 질문도 있었습니다.
두세 달을 간호했던 분이 제 앞에서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을 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건강한 모습으로 계셨다가 1, 2년이 지나며 계속 나빠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 기분이 좋을 리 없지만, 펑펑 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의료진 사이에서는 거기서 슬픔을 느끼거나 표현하면 유별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고 간호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거리 두기가 잘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을 써서 간호했던 분이 갑자기 떠나거나 상태가 나빠지면 슬픕니다. 그 감정은 한번 충분히 느끼고 지나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눈물이 나면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한번 울어도 됩니다. 잘못 접근하면 슬픔을 느끼는 내가 잘못된 것 아닌가 하는 질문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나도 한 사람이라서 이런 상황에 슬픔과 괴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감정을 모른 척하고 외면한 채 그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학생들에게 말했습니다. 책에 그 시간을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누구도 간호사인 내게 임종한 환자를 애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누군가는 새빨간 토끼 눈이었던 나를 보고 '왜 저렇게 오버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간호사에게도 환자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147쪽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면
간호사를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정말 많았다고 답했습니다. 특히 신입 때 적응하는 시기가 그랬습니다. 그런데 적응하고 나니 일이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공부한 것으로 이 환자분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느낌이 있습니다. 환자분이 불편해할 수 있는 것을 먼저 가서 여쭤보고 전문적으로 케어해 드리면 저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집니다. 간호사님한테 계속 간호받고 싶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런 경험이 쌓이면 출근이 재미있어지는 때가 옵니다.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거울 앞에 서서 오늘 나는 어떤 간호사일까 생각하며 일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고 번아웃이 온 때도 있었지만, 늘 힘들고 늘 그만두고 싶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 하면,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정말 많이 듣는 직업이라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인사가 아닙니다. 가족의 임종이라는, 살면서 한두 번 겪는 사건의 곁에서 나를 직접 위로하고 도와준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고마울까요.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5만 원짜리 몇 장을 챙겨 제 손에 쥐여 주려던 분도 있었고, 남편을 떠나보낸 뒤 병실 밖으로 나와 저를 꼭 안아 주며 선생님 덕분에 편하게 가신 것 같다고 말한 분도 있었습니다. 오래 일한 선생님들께 어떻게 이렇게 오래 하실 수 있었느냐고 여쭤보면 답이 같았습니다.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다가도 그런 순간을 한번 겪고 나면 이 일에서 이런 보람을 느낄 수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계속하게 된다고요.
처방이 없으면 진통제 하나도
이 직업의 한계도 그대로 말했습니다. 완전히 주도적인 역할은 아니라는 것을 느낀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새벽 근무 중에 한 환자분이 까만 변을 보셨습니다. 장에서 출혈이 있다가 고여서 나오는 흑색변이었습니다. 급히 의사에게 알리고 검사를 나갔더니 헤모글로빈 수치가 뚝 떨어져 있었고 혈압도 많이 내려가 있었습니다. 지혈 시술이 필요한 분이었는데 새벽이라 그 밤 내내 제가 그분만 간호하게 되었습니다. 수혈 처방이 계속 나고, 혈액은행에서 피를 받아 오고, 두꺼운 바늘을 넣고, 혈액형을 확인하고, 수혈을 하고, 다시 수치가 올랐는지 혈압과 맥박은 괜찮은지 창백한 얼굴은 나아지는지 어지럼은 덜한지를 밤새 확인했습니다. 그렇게 모든 것을 갈아 넣어 간호한 대상이 그 밤에 한 분으로 국한된다는 것이 저에게는 아쉬웠습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갈증이 있는 제 성향 때문이었습니다.
다른 밤에는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환자분이 통증을 심하게 호소했습니다. 그런데 의사 처방이 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간호사는 처방 없이 진통제를 마음대로 투약할 수 없습니다. 담당 의사에게 전화해도 받지 않고, 환자분은 미쳐 죽을 것 같다고 저에게 호소하고, 저는 병원을 뛰어다니며 의사를 찾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던 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도적인 역할을 원하는 분들은 다른 길을 찾기도 합니다. 같은 병동에서 일하던 후배들 중에는 미국으로 간 분들이 있고, 병원 안에서 전문간호사처럼 더 큰 권한을 가지는 역할을 공부해서 대학원에 간 분들도 있습니다. 결국 제일 중요한 것은 나라는 사람의 성향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간호라는 일이 그 성향을 충분히 채워 주는지를 계속 물으면서 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I 시대에도 남는 것
AI 시대에 간호사가 완전히 대체될 수 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간호는 기술적인 영역만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영역, 그리고 사람 대 사람으로 전할 수 있는 정서적인 영역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대체되지 않는 경쟁력을 가진 직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요즘 합니다.
그렇다고 AI를 멀리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마지막 질문은 간호사가 되기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과목이 무엇이냐는 것이었는데, 학문은 간호학과에 가서 배우는 것에 충실하면 되고 자기가 가는 과에 따라 더 공부할 것이 자연스럽게 생긴다고 답했습니다. 저는 종양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다양한 책을 읽는 것을 놓지 않는 것, 그리고 AI를 활용하는 것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임상 현장에서도 AI 도입이 계속 검토되고 있고 산학 협력 연구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간호사가 위험 징후를 발견했을 때 AI에게 묻고 대처를 함께 정리하는 날이 올 수도 있습니다. 힘든 밤의 멘탈 케어를 AI의 도움으로 할 수도 있고, 더 전문적인 간호 방법을 AI와 같이 공부해 나갈 수도 있습니다. 간호학을 전공한 사람이 AI 기술을 배워 임상에 녹여 내면 그것이 전문성이 되고, 그 전문성의 유무에 따라 만족도도 처우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가 담긴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