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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학과 실습에서 못 본 것, 명찰을 달고 본 첫 병실

간호학과 실습에서 현타가 온다면 읽었으면 하는 기록. 종양내과를 실습생으로 한 번, 간호사로 한 번 처음 본 사람이 첫날 2인실에서 본 것과 두 눈이 다른 이유를 적었습니다.

간호대학 3학년 때 서울아산병원 인턴십에 지원했습니다. 학교마다 일곱 명에서 열 명 정도가 갈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고, 저는 그때 종양내과 병동에 배정되어 일주일 남짓 실습을 했습니다. 몇 년 뒤 저는 같은 병원, 같은 종양내과에 간호사로 입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같은 병동을 두 번 처음 본 셈입니다. 한 번은 실습복을 입은 학생으로, 한 번은 명찰을 단 간호사로. 이 글은 그 두 번의 첫날이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실습 중에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 드는 분에게, 그 마음이 어디에서 오는지 제가 아는 만큼만 적어 보려고 합니다.

병동 복도에서 선배 간호사의 뒤를 따라 걷는 실습생의 뒷모습을 그린 삽화
실습생일 때 저는 늘 누군가의 뒤에서 병동을 봤습니다.

목차

  1. 실습생의 눈에 보이던 것
  2. 명찰을 달고 들어간 첫 2인실
  3. 같은 날, 다른 병실
  4. 양말에 구멍이 나는 병동
  5. 발목까지만 담갔던 시간
  6. 실습에서 현타가 온다면
  7. 이 이야기가 담긴 책

실습생의 눈에 보이던 것

인턴십 일주일 동안 제가 본 암환자의 모습은 솔직히 말해 미디어에서 본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항암제를 맞으면 머리가 빠지고, 속이 울렁거려서 구토를 하고, 살이 빠져 거동이 불편해지는 정도.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암환자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지 물으면 늘 같은 답이 나오는데, 실습생 시절의 저도 정확히 그 수준이었습니다. 학생 간호사로 관찰만 했던지라 크게 놀라거나 인상 깊은 일이 없었고, 더 깊게 보려고 하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실습이 부실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실습생은 병동의 흐름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이라서, 환자의 상태가 나빠져도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위치가 아닙니다. 보는 것과 감당하는 것은 다른 일이고, 실습은 구조적으로 보는 쪽에만 서 있게 되어 있습니다. 책 뒤에 추천의 글을 써 주신 분당서울대병원 박효진 간호사가 이렇게 적었는데, 저는 이 문장이 제 실습 시절을 그대로 설명한다고 느꼈습니다.

병원 현장의 치열함이라고는, 임상 실습에서나 곁눈질로 본 간호사의 식은땀과 숨가쁜 걸음으로 추측했던 것이 전부였다.

218쪽

곁눈질. 실습생의 눈은 그 단어에 가깝습니다.

명찰을 달고 들어간 첫 2인실

입사하고 처음 며칠은 관찰실습이라고 해서, 선배 간호사를 따라다니며 이 병동이 어떤 곳이고 내가 간호하게 될 환자가 어떤 분들인지 보는 시간을 갖습니다. 첫날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간호사 김민경" 명찰을 달고, 선배 한 분을 따라 병실에 들어갔습니다. 학생 때 이미 와 본 병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본 환자분은 지금도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2인실이었고, 40대 여성 환자분이었습니다. 암이 온몸에 전이되어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었고, 전이된 곳에서 생기는 통증과 증상을 조금이라도 덜어 드리기 위해 입원해 계신 분이었습니다. 병원 침대에는 밥을 먹을 때 올리는 식탁이 하나 있습니다. 그 식탁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숙인 채 앉아 계셨는데, 그 아래에 침대마다 하나씩 있는 작은 휴지통을 올려 두고 거기에 얼굴을 대고 계셨습니다. 속이 계속 안 좋아서 언제라도 토가 나올 것 같으니까요. 물도 드시지 못했습니다. 물만 조금 삼켜도 바로 올라왔습니다. 토할 것이 없는데도 구역질은 멈추지 않았고, 진통제를 투약해도 30분에서 한 시간이면 효과가 끝나 다시 통증을 호소하셨습니다. 입으로 드실 수 없어 영양제로만 영양을 공급받고 계셨고, 몸은 뼈만 남은 것처럼 말라 있었습니다. 항암치료를 오래 한 뒤라 머리카락도 몇 올 남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저는 선배 뒤에서 봤습니다. 그리고 그때 든 생각은 학생 때와 전혀 달랐습니다. 학생 때는 안타깝다는 마음에서 끝났다면, 그날은 이런 질문이 먼저 왔습니다. 내가 저분에게 어떤 간호를 했을 때 저분이 조금이라도 평안해지실 수 있을까. 그리고 그 뒤에 따라온 것은, 저는 이제 학생이 아니라서 이 상황에서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병실 침대의 식탁에 팔을 올리고 고개를 숙인 환자와, 그 뒤에서 조용히 서 있는 간호사를 그린 삽화
내가 저분에게 어떤 간호를 했을 때 조금이라도 평안해지실까. 그 질문이 처음 온 날이었습니다.

같은 날, 다른 병실

관찰실습 며칠 사이에 병동에서는 이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보호자 한 분이 급하게 스테이션으로 와서 "선생님, 선생님, 여기 좀 봐 주세요" 하셔서 뛰어가 보니 환자분이 피를 한가득 토해 놓으신 상태였습니다. 위장관 쪽 암에서 급성 출혈이 생기면 그 피가 위로 올라오는데, 이걸 토혈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환자분은 "저 변을 봤는데 색깔이 좀 이상해요" 하셔서 같이 화장실에 가 변기 뚜껑을 열어 보니 물이 빨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장에서 출혈이 있으면 그렇게 혈변으로 나옵니다. 이런 출혈은 갑자기 혈압을 떨어뜨릴 수 있어서 바로 혈압을 재고 혈액검사를 나가고 필요하면 수혈을 해야 합니다.

일주일 실습에서는 이런 장면을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없어서가 아니라, 제가 서 있던 자리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학생 때 제가 관찰한 것은 병동의 평온한 표면이었고, 간호사가 되어 들어간 병동은 그 표면 아래에서 계속 무언가가 터지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양말에 구멍이 나는 병동

종양내과 병동은 병원 안에서도 힘들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종양내과 간호사라고 하면 병원 직원들 사이에서도 고생하는 과라는 뉘앙스로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신고 나간 양말이 퇴근할 때 보면 구멍이 나 있던 날이 있었습니다. 발이 뜨거울 정도로 계속 뛰어다니며 일했다는 뜻입니다.

근무를 마친 간호사가 탈의실 벤치에 앉아 양말 끝의 작은 구멍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린 삽화
아침에 신고 간 양말이 퇴근할 때 보면 구멍 나 있던 날이 있었습니다.

간호사가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고 일한다는 말,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게 진짜일까 궁금해하는 분이 많은데, 제가 경험한 병동은 실제로 그랬습니다. 다만 365일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그런 날이었다고 말하는 게 정확합니다. 중증도가 높은 환자분들이 계시는 병동이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부분은 책의 2부 프롤로그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곳 종양내과에서 생명과 직결된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은 얕은 물살 아래 발목만을 담근 채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두렵더라도 물속 깊숙이 내 몸 한가득 담그고 있어야 할 수 있는 일이었다.

115쪽

발목까지만 담갔던 시간

실습은 발목까지 담그는 시간입니다. 저는 그게 실습의 한계라기보다 실습의 정의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학생은 병동에서 책임을 지는 사람이 아니고, 그래서 병동의 가장 깊은 곳은 학생에게 열리지 않습니다. 저도 실습 때는 물살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고, 입사한 뒤에야 그 물살에 밀려 한참을 앓았습니다.

현실은 여지없이 냉혹했다. '좋은 일'이라던 막연한 기대는 현실에서 길을 잃고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이곳에 와서 힘든 임상을 겪으며 기대와 현실 사이의 큰 온도 차로 긴 시간동안 심한 홍역을 앓았다.

117쪽

이 문장을 쓴 사람이 간호학과를 선택했던 이유는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 직접 도움이 되는 학문이니 배울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 그리고 대형병원 취업이 상대적으로 쉽다는 담임선생님의 조언이었습니다. 책에 "세상 물정을 몰랐던 어린 학생이었다"116쪽라고 적었는데, 그 학생이 실습복을 입고 종양내과에 갔던 것이고, 그 학생이 몇 년 뒤 명찰을 달고 같은 곳에 돌아온 것입니다.

실습에서 현타가 온다면

실습 중에 이게 맞나 싶은 마음이 드는 분들의 글을 종종 봅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그 마음은 병동을 잘못 본 데서 오는 게 아니라, 처음으로 병동을 제대로 보기 시작한 데서 옵니다. 곁눈질로 보던 것이 정면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 오는 감각이고, 저는 그걸 입사 첫날 2인실에서 뒤늦게 겪었습니다. 실습에서 먼저 겪는 분은 저보다 몇 년 빠른 겁니다.

책의 추천의 글에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4학년 주나영 학생이 이렇게 썼습니다.

학생으로서, 간호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그저 간호사가 되고 나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을 미뤄왔던 저로선, 이 책의 작가님처럼 치열한 고민과 스스로에 대한 질문, 성찰의 과정이 없다면 결코 얻어질 수 없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20쪽

저는 그 고민을 실습 때 하지 못했고, 병동에 들어가서야 시작했습니다. 첫 여름을 지나고 나서 저 자신에게 담백하게 했던 말이 책에 남아 있습니다.

잘 견뎌 내 주어 고맙다. 이렇게 또 한 번의 여름을 더 성숙한 모습으로 맞아줘서 진짜 고맙다.

118쪽

실습에서 이미 그 물살을 느끼고 있는 분이라면, 발목까지만 담근 지금의 감각을 기억해 두었으면 합니다. 나중에 명찰을 달고 같은 병동에 들어가는 날, 그 기억이 실습 후기 어디에도 없는 자기만의 기준이 됩니다.

이 이야기가 담긴 책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표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어느 간호사의 죽음 이야기
김민경 지음 · 에테르니 · 224쪽

2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종양내과에 발목이 아니라 온몸을 담그게 된 신입 간호사의 첫해가 적힌 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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