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간호사 일기를 찾아 읽으며, 다른 사람도 나처럼 힘든지 궁금했던 적이 있나요? 근무를 마쳐도 그날의 인계와 환자의 말이 마음에 남을 때가 있습니다. 저도 신규 시절에는 병원에서 겪는 일들이 버거워 새벽 두 시에 퇴근하고도 그날의 일을 적곤 했습니다. 그 기록들이 모여 『나이팅게일은 죽었다』가 되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책에 담긴 근무 일기를 함께 읽으며, 한 간호사가 동료와 환자를 어떤 마음으로 마주했는지 살펴봅니다. 책 속 문장에서 내 하루와 닮은 부분을 찾아보고, 나머지 기록도 읽고 싶은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목차
일 년이 되었는데도 병원 꿈을 꾸었습니다
간호사로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 쓴 일기가 책에 들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고작 일 년일지 모르지만, 제게는 치열하고 고달픈 하루하루가 쌓인 시간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일과 일상의 분리를 시키지 못해 느끼는 소모감에 점차 지쳐가는 나. 매일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고 인정하는 일. 스스로 과연 간호사를 할 자격이 있는 것인지 묻기를 수십 차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173쪽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퇴근했다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출근하기 전날 밤이면 꿈에서도 일을 했습니다.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 있는데 인계를 줘야 했고, 환자 파악이 하나도 되지 않은 상태로 어리둥절해 있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했던 실수를 꿈속에서 그대로 반복하며 혼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할 때 임종했던 환자분들이 꿈에 한꺼번에 나타난 적도 있습니다.
일 년을 다녔으니 이제 익숙해졌다고, 처음보다 나아졌으니 괜찮다고 적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바로 다음 쪽에도 여전히 일과 일상을 분리하지 못한 채 감정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저는 그 일기에서 병원에 있는 동안 무엇을 배울 수 있을지 묻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나의 한계를 마주하고, 실수로 작아진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썼습니다.
글은 그날 겪은 일을 제 안에서 정리하는 방법이었습니다. 환자가 죽어가는 병동에서 역할을 제대로 해내야 한다는 부담과, 그 일을 하면서 느끼는 버거움을 어떻게든 풀어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일을 겪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글을 썼습니다. 책을 쓰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 시간을 지나기 위해 써 놓은 글들이 나중에 책이 되었습니다.

십 분만 기다려 달라고 했던 밤
책에는 병동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적은 글도 있습니다. 그중에는 처음부터 마음을 다해 환자를 살핀 이야기가 아닌 것도 있습니다.
한밤중, 환자 한 분이 무거운 다리를 이끌고 스테이션으로 나왔습니다. 관을 뺀 자리에서 체액이 계속 새어 나와 옷이 축축해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하던 일을 마무리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십 분 안에 병실로 가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환자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너무 축축해져 버려서 앉을 수가 없어요.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124쪽
그제야 아차 싶었습니다. 언젠가 흠뻑 젖은 옷을 입고 찝찝해하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환자복과 필요한 물품을 챙겨 병실로 갔습니다.
가서 본 환자복은 물에 담갔다 뺀 것처럼 젖어 있었습니다. 환자는 부어오른 다리 때문에 혼자 바지를 내리는 것도, 올리는 것도 힘들었습니다. 그 몸으로 스테이션까지 나와 말을 건넸는데, 저는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보지도 않고 기다려 달라고 했던 것입니다. 미안했습니다.
저는 바닥에 무릎을 대고 앉아 환자의 몸을 받쳤습니다. 환자가 한 발씩 바지에 넣을 수 있도록 위치를 맞추고, 하나 둘 셋, 작게 구호를 맞추며 옷을 갈아입혔습니다. 십여 분이 넘게 걸렸습니다. 얼굴에 열이 오르고 허리는 뻐근했지만, 이상하게 힘든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젖은 옷을 직접 가져다 놓겠다는 환자에게 편히 쉬시라고 말씀드린 뒤 병실에서 나왔습니다.
아침에 남은 일을 정리하고 있는데 그분이 저를 불러 세웠습니다. 구부정하게 서서 오늘 정말 고마웠다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며칠간 쌓인 피로가 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환자의 젖은 옷을 갈아입히는 일은 결코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도와드린 뒤 환자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면, 내가 하는 일이 의미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때에는 밤을 지새우고 환자와 함께 고생하는 일이 힘들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후배의 인계를 받는 쪽이 되고 나서
책에는 신규 시절을 지나 후배 간호사의 인계를 받던 밤도 나옵니다. 이때도 근무를 앞둔 마음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언제 나빠질지 알 수 없었고, 후배가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제가 보완해야 했습니다. 밤 동안 특별히 신경 쓸 일은 무엇인지, 다음 날 시술이나 퇴원 준비는 되어 있는지 확인했습니다. 인계를 듣는 것만으로 알 수 없는 부분은 다시 물어봐야 했습니다.

그렇게 환자를 파악하던 이야기를 쓰면서, 저는 후배에게 어떻게 말을 건네야 할지도 적었습니다.
이때 조금 더 신경 쓰는 부분은 감정을 배제하고 말하는 것이다. 혹여나 ‘네 인계가 충분치 못하다.’라는 이유로 감정 섞인 비난을 할 이유가 없다. 후배 역시 그런 비난을 받을 이유 또한 없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161쪽
업무를 정확히 확인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어졌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인계만으로 부족하면 질문해서 알아내야 하고, 빠진 부분은 채워야 했습니다. 저는 그 일을 하면서도 감정이 섞인 비난을 할 이유는 없다고 적었습니다. 그날의 기록은 큰 무리 없이 인계를 받았다는 문장으로 이어집니다.
일을 시작한 지 일 년이 되었을 때의 일기에는 스스로 간호사를 할 자격이 있는지 수십 번 물었다는 문장이 있고, 이 밤의 기록에는 후배가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쓴 글이지만, 책에서는 두 시절의 저를 함께 읽을 수 있습니다.
열한 시간 일하고 돌아온 날에 적은 것
그날 밤에는 인계를 받는 일보다 훨씬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약물을 투여하던 환자, 출혈이 반복되던 환자, 갑자기 숨쉬기 힘들어져 상태를 확인하고 의사에게 알려야 했던 환자가 있었습니다.
호흡이 힘들어진 분에게 처치를 하고 수치가 조금씩 안정되는 것을 보더라도 마음이 놓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이미 호스피스 돌봄을 준비하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는 속도에 맞추어 조치를 취하는 날들이 이어졌습니다. 그 끝에서 죽음을 맞는 분들을 보면서, 저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이 무엇인지 쉽게 답하지 못했습니다. 반복해서 무기력해지곤 했습니다.
사흘째 계속된 나이트 근무였습니다. 쉬는 시간 없이 일하다 힘이 빠져 사탕을 입에 물었습니다. 아침에 데이 간호사가 출근했을 때도,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마저 처리하려 했습니다. 같은 환자들을 맡는 동료가 얼마나 바쁠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다음 순서로 일하는 간호사가 조금이나마 편할 수 있었습니다.
그 긴 근무를 적은 글은 이렇게 끝납니다.
오늘도 열심히 달렸다. 머리는 멍하지만 동시에 내 감정을 훑고 지나간 것들이 많았던 근무였다. 부디 꿈에선 병동이 나오지 않으면 좋겠단 바람을 하며, 약 열한 시간의 시간을 병원과 함께한 후 퇴근했다.
『나이팅게일은 죽었다』, 170쪽
첫해의 일기에서도 병원 꿈을 꾸었고, 후배의 인계를 받는 연차가 된 뒤에도 꿈에서는 병동을 만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그 사이에 배우고 익숙해진 것들이 있었지만, 환자 곁에서 일하며 느끼는 감정까지 저절로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 기록에는 감사 인사를 받았던 날과 무기력했던 날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느끼면서도 지쳤고, 그 일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힘들었습니다.
이 일기들이 모인 책
『나이팅게일은 죽었다』의 2부에는 첫해에 쓴 일기와 그 이후의 근무 기록이 함께 있습니다. 이 글에서 읽은 젖은 환자복의 이야기는 「남들 잘 때, 우리가 하는 일」에, 후배에게 인계를 받고 열한 시간을 일한 밤은 「복기(復碁)해보는 어느 날의 나이트 근무」에 담겨 있습니다. 첫해의 일기는 「그래서 간호사는 힘들다」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신규간호사 일기를 찾다가 이 글에 닿았다면 2부부터 펼쳐도 좋겠습니다. 어떻게 해야 실수하지 않는지 알려 주는 실무서는 아닙니다. 저 역시 실수했고, 기다려 달라고 말한 뒤에야 환자의 불편함을 알아차렸고, 일을 마친 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환자를 간호하며 오래 마음에 남았던 순간들과 일하는 동안의 고단함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