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다 읽었고 마음에 남은 장면도 있는데, 막상 문서를 열면 첫 줄이 안 나옵니다. 검색을 하면 A+ 받았다는 남의 독후감을 파는 페이지가 먼저 뜨고, 그걸 열어볼까 말까 망설이는 마음까지 저는 짐작이 갑니다. 이 글은 그 자리를 대신 써 주는 글이 아닙니다. 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독후감의 첫 줄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를 같이 찾아 드리는 글입니다. 첫 줄이 시작되는 자리 세 곳, 세특으로 이을 때 달라지는 한 가지, 그리고 그 밖에 자주 옮겨 적는 구절까지 전부 쪽수를 붙여 적었습니다.
목차
- 이 책에는 줄거리가 없다
- 죽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살아 있었다
- 선생님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 내 몸은 한 개라서 한계가 있다
- 세특이라면, 애도할 시간에서
- 그 밖에 자주 옮겨 적는 구절
- 이 이야기가 담긴 책
이 책에는 줄거리가 없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에서 암 환자를 간호한 간호사의 기록입니다. 1부 「유명」은 임종을 곁에서 지킨 날들이고, 2부 「나이팅게일은 죽었다」는 3교대와 거른 밥, 애도할 틈 없는 일상입니다. 두 부를 합쳐 224쪽, 장 하나하나가 각자 하나의 장면이라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사건은 없습니다. 그래서 줄거리를 요약하는 식으로 시작하면 첫 문단에서 막힙니다. 이 책의 독후감은 장면 하나를 붙잡고 들어가는 편이 훨씬 잘 써집니다. 아래 세 자리는 제가 독자들의 편지와 후기에서 가장 자주 만난 장면이고, 독후감의 첫 줄이 가장 자주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죽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가장 살아 있었다
"형님, 그렇게 힘이 없어서 어떡해요. 살아있는 동안은 힘을 내야죠. 같이 한 바퀴 돌고 오실까요?" (본문 26쪽)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가, 무기력해진 옆 침대 환자에게 건넨 말입니다. 그날 병동에서 가장 살아 있던 사람은 죽음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1부는 이 장면에서 시작해 「죽음, 두려워하지 말 것」에서 닫히는데, 저 자신이 죽음을 외면하며 살던 사람이라 111쪽의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다"까지 가는 데 책 한 부가 걸렸습니다. 죽음을 곁에서 본 사람이 삶을 어떻게 다시 보게 되는지를 쓰고 싶다면 여기가 첫 줄입니다. 간호 전공이 아닌 교양이나 윤리 수업 과제에도 이 자리가 맞습니다. 쓴다면, 이 장면에서 책을 덮고 한동안 있었다는 사실부터 적고, 왜 하필 그 사람이 힘을 내자고 말할 수 있었는지를 자기 말로 따라가 보세요.
선생님 어머니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만약 선생님 어머니가 제 어머니처럼 치료가 너무 힘들어서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본문 32쪽)
입퇴원을 반복하던 환자가 창밖을 보며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하고 물은 날, 곁에서 듣던 따님이 제게 던진 질문입니다. 배운 대로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니어서 저는 한참을 그냥 서 있었습니다. 그 침묵이 이 책에서 가장 간호사다운 장면이었다고 말해 준 독자가 여럿입니다. 실습을 앞두고 있거나 이미 다녀온 사람이라면 이 자리에서 할 말이 가장 많을 겁니다. 환자를 환자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마주하는 순간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정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질문 앞에 같이 서 있는 사람이 간호사라는 것을 이 장면 하나로 쓸 수 있습니다.

내 몸은 한 개라서 한계가 있다
"내 몸은 한 개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본문 198쪽)
특히나 바쁜 날, 환자들이 동시에 저를 부르던 장면 뒤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2부에는 밥을 거르고 화장실 갈 틈도 없던 날에 속으로 던진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간호이자, 노동인가?"(192쪽) 같은 문장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저는 책을 닫으며 이렇게 썼습니다. "간호사라는 직업이 오직 힘들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지는 게 늘 안타까웠다."(208쪽) 198쪽과 208쪽 사이가 이 책의 자리입니다. 간호학과 과제와 고등학교 세특 양쪽에 가장 무난하게 맞는 첫 줄이 여기이기도 합니다. 힘든 현실을 알고 나서도 이 길에 남는 이유를 쓰되, "그래도 보람 있다"로 서둘러 닫지 말고 두 문장 사이에서 자기가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지를 적어 보세요. 그게 독후감과 소감문의 차이입니다.
세특이라면, 애도할 시간에서
"그렇지만, 간호사에게도 환자의 죽음을 애도할 시간이 필요하다." (본문 147쪽)
몇 년 만에 다시 입원해 저를 기억해 준 환자가 제 눈앞에서 갑자기 떠난 날, 가을 하늘 아래에서 기어이 울고 나서 쓴 문장입니다. 세특은 감상에서 끝나면 안 되고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이 독후감과 다른데, 이 책에서 질문이 가장 자연스럽게 나오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환자를 잃은 간호사의 애도는 누가 어떻게 지켜 주는가." 이 질문을 세우면 병원 안의 직원 심리지원이나 간호사 소진에 관한 자료로 이어집니다. 밥을 거르는 근무가 왜 없어지지 않는지(192쪽)에서 출발하면 인력 배치 기준 쪽으로, 누구나 한 번쯤 환자가 된다(210쪽)에서 출발하면 환자경험평가 같은 지표 쪽으로 갑니다. 제도와 통계는 제 몫이 아니라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고, 대신 어디서부터 찾으면 되는지를 적어 두었습니다. 아직 어떤 책을 읽을지 고르는 중이라면 간호학과 생기부 독서 기록 방향이 순서상 먼저입니다.

그 밖에 자주 옮겨 적는 구절
위의 다섯 문장 말고도 독자들이 자주 옮겨 적는 문장들입니다. 쪽수는 2019년 개정판 종이책 기준입니다.
-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요." (30쪽,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다」)
- "홀로 견뎌내야만 하는 외로운 죽음은 너무도 차고 시리다." (59쪽, 「혼자 맞는 죽음은 차고 시리다」)
- "당신에겐, 생을 떠난 후 진정으로 당신을 추억해 줄 누군가가 있는가." (59쪽, 같은 장)
- "그래서 나는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로 했다." (111쪽, 「죽음, 두려워하지 말 것」)
- "누구에게나 삶은 유한하다." (111쪽, 1부를 닫는 문장)
- "숨 쉴 틈 없이 일했던 날일수록, 밤하늘 어딘가에 있는 달을 기어이 찾아내고야 만다." (171쪽, 「그래서 간호사는 힘들다」)
- '버텨내는 것까지가 재능이다.' (173쪽, 일 년째 되던 날의 일기)
- '이게 도대체 누구를 위한 간호이자, 노동인가?' (192쪽, 「조선 시대에도 밥은 먹고 일했다던데」)
- "우리 누구나가 한 번쯤은 환자가 될 수 있다." (210쪽, 「Epilogue」)
한 가지는 적어 둡니다. 이 책은 224쪽짜리 1인칭 기록이라 간호이론이나 제도를 분석하는 과제, 최근 정책 변화를 다루는 과제에는 본문으로 삼기 어렵습니다. 그런 과제라면 교과서나 논문을 본문으로 두고 이 책은 사례로 한두 문장 인용하는 정도가 맞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