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어떤 책을 건네면 좋을지 생각하다 보면, 공부를 잘하는 방법보다 공부하며 흔들리는 마음을 함께 들여다볼 이야기가 필요할 때가 있다. 입시를 지나온 어른에게도 그 시절의 불안과 상처는 쉽게 잊히지 않는다. 《카나리아의 날갯짓》은 의대에 합격한 세 사람이 쓴 책이지만, 내가 이 원고에서 배운 것은 합격의 비결이 아니었다. 책을 만든 편집자로서 오래 마음에 남은 이야기들을 통해, 이 책이 아이와 부모에게 어떤 읽을거리가 될 수 있을지 전하려 한다.
목차
엄마의 ‘후회’ 앞에서
영서가 엄마에게서 ‘후회’라는 말을 듣고 저절로 눈물을 흘렸다는 대목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의대에 가야 한다는 주변의 기대를 안고 공부했던 영서가, 자신의 상처를 돌아보면서 엄마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과연 엄마에게 상처를 준 건 누구였을까. 딸의 성공을 누구보다 간절히 빌었던 엄마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평범한 딸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의대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였을까.
《카나리아의 날갯짓》, 16쪽
엄마도 그것만이 정답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붙들었던 그 믿음이, 아이에게 어떤 무게였는지를 뒤늦게 돌아보는 마음. 나는 영서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동시에 느껴졌다. 입시를 지나온 사람이면서,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게도 입시는 좋은 기억만으로 남아 있지 않다. 늘 허상과 같은 목표를 좇느라 바빴고, 늘 부족하고 불안했다. 결과도 좋지 않았다. 그때는 입시에 실패하면 인생도 실패하는 줄 알았다. 그런 시간을 지나온 내가 영서의 이야기를 읽고 있었다.
숫자로 설명되지 않는 세 사람의 시간
이 책의 원고를 처음 마주했을 때 느꼈던 감정은, 거대한 압박감 속에서 질식해 가는 친구들의 절박한 숨소리를 듣는 것과 같았다.
입시의 중압감은 여전히 크다. 성적과 등수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동안, 어느새 그 숫자가 나라는 사람의 가치까지 설명한다고 믿게 된다. 남들이 정해놓은 성공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여기고, 때로는 스스로를 미워하기까지 한다. 과거의 나도 그 믿음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숫자가 곧 그 사람의 고유한 가치와 본질을 결정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카나리아의 날갯짓》의 세 저자는 각자의 이야기를 꺼냈다. 공부로는 가장 높은 곳까지 가본 친구들이었지만, 원고에는 그 결과만으로는 짐작하기 어려운 치열한 시간이 담겨 있었다.
영서에게 마음이 갔던 것은 다시 도전하는 순간들이었다. 의대에 가야 한다는 기대와 엄청난 중압감 속에서 공부했고, 실패도 겪었다. 그럼에도 다시 마음을 잡고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나는 그 과정을 결국 자기 자신을 믿어본 이야기로 읽었다. 결과를 이미 알고 읽으면서도,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때의 마음에 자꾸 눈길이 갔다.
지호의 이야기는 안도감을 주었다. 남들보다 느리다는 이유로 자괴감과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끝내 자신의 속도를 묵묵히 지켜내는 모습이 좋았다. 저렇게 자기만의 속도로 가도 괜찮구나. 그 안에서도 자기 몫의 성과를 만들어갈 수 있구나. 조급했던 나에게도 필요한 이야기였다.
다인은 의대에 가서도 느꼈던 열등감을 솔직하게 꺼냈다.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많은 것이 해결될 거라는 믿음에, 다인의 고백은 균열을 냈다. 진짜 성공은 무엇이고 행복은 무엇인지, 그 안에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묻는 이야기는 합격 뒤에도 계속되고 있었다. 나 역시 아직 답을 찾아가는 질문들이었다.
공감하며 읽다가도 문득 놀라게 됐다. 이 나이에 이런 것을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렇게 살아보았다고? 각자의 한계를 마주하고 넘어서는 과정에서 세 사람이 보여준 태도에는, 나도 배우고 싶은 것이 많았다.
입시가 끝난 뒤에도 남는 것
살아보니 입시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었다. 그때 내가 믿었던 것처럼 한 번의 결과로 삶 전체가 결정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내는 데 필요한 태도를 몸으로, 마음으로 배울 수 있다. 나 자신을 믿는 것, 주어진 순간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것, 끊임없이 나 자신과 대화하는 것. 내가 세 저자에게 다시 배운 것도 그런 태도였다.

그래서 이 책이 의대에 가기 위한 성공담으로만 읽히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도 너희는 의대에 갔잖아”라는 말 앞에서 세 사람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으면 했다. 합격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이 겪은 불안과 실패, 자신을 의심했던 시간까지 설명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점수라는 결과값에 흔들리면서도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지켜낼 수는 없을까. 이 책의 이야기는 그 질문과 맞닿아 있다. 세 사람이 자신의 시간을 솔직하게 돌아보는 동안, 읽는 사람도 그 안에서 자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그랬다.
우리 아이들에게 건네고 싶은 책
편집하면서 가장 지키고 싶었던 것은 저자들이 그 시간을 살아낸 진심이었다. 그 진심이 온전히 담겨서, 훗날 저자들이 자신의 자녀에게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이 원고를 책으로 내고 싶었던 이유도 멀리 있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에게 읽히고 싶었다. 우리 아이들이 꼭 한 번 읽어봤으면 하는 책이었다.
내가 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받았듯, 입시 체계 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기를 바랐다. 지금 그 시간을 지나는 아이에게도, 아이가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에게도, 입시가 끝난 지 오래되었지만 아직 그때의 마음을 안고 사는 어른에게도 이 이야기가 닿았으면 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누구의 이야기에 마음이 갈지 궁금하다. 다시 자신을 믿어보는 영서일 수도, 묵묵히 자기 속도를 지키는 지호일 수도, 행복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묻는 다인일 수도 있겠다. 아이들이 어떤 대목에서 멈추었는지 듣고, 나도 이 책을 만들며 오래 마음에 두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세 사람의 전체 이야기는 《카나리아의 날갯짓》 책 소개에서 이어서 볼 수 있다.
에테르니 · 편집자의 시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