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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나리아의 날갯짓 · 미리 읽기

프롤로그: 덮어두었던 진심

엄마와 밥을 먹다가, 엄마에게서 ‘후회’라는 말을 처음 들은 날의 이야기입니다. 1부 영서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프롤로그 12~18쪽을 저자 동의를 받아 그대로 싣습니다.

글쓴이
조영서
위치
1부 영서의 이야기 · 본문 12~18쪽

책의 12~18쪽을 저자 동의를 받아 옮겼습니다 · 2026년 10월 15일

12쪽엄마와 밥을 먹던 어느 날,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일상 얘기가 오가다가 엄마가 갑자기 공부 이야기를 꺼냈다. 몇 주 전 친구 엄마들과 만났는데, 내 옛날얘기가 나왔나 보다.

내 어릴 적 친구가,

“영서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시험에서 고작 한 문제 틀렸는데 엄청 걱정이 많아 보여서, 뭐 이런 애도 있나 싶었어.”라고 자기 엄마한테 말했던 모양이다.

그 시절을 떠올리며 엄마가 조심스레 내게 말을 꺼냈다.

“애들 어릴 때, 그거 조금 틀린 게 뭐라고…그렇게까지 공부하라고 몰아붙였던 게 후회…”

13쪽엄마의 눈시울이 금세 빨개졌고 목이 멘 듯했다. 그 뒤에 이어지는 말을 들을 순 없었지만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사실 ‘후회’라는 표현은 엄마 입에서 처음 듣는 말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도 비슷한 이야기를 꺼내면 “다 지난 일이잖아. 너 결국 의대 가고 잘됐잖아”라고 회피하곤 했던 엄마였는데…

근데 그날 엄마의 그 후회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 볼에 눈물이 떨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후회’라는 단어에 그냥 바로 눈물이 흘렀다. 마치 ‘후회’라는 단어에 눈물을 흘리기로 세팅이라도 해두었나 싶을 정도의 반응 속도였다. 어쩌면 엄마한테서 한 번쯤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어서 그랬나 싶다. 과거엔 남몰래 눈치만 보고 혼자서 힘들어했던 순간이 너무 많았으니까.

나는 애써 흐르는 눈물을 빳빳한 휴지로 빠르게 닦아내고 차분하게 대답을 이어 나갔다.

“엄마도 그런 생각을 했구나… 엄마는 아닌 줄 알았는데…”

예전의 나라면 절대 이렇게 대답하진 않았을 거다. 아니 못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하면서 느낄 수 있었다. 내 가슴 속 어딘가에서 강렬하게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 감정의 이름은 오래전부터 쌓인 ‘원망’이었다. 이번 기회에 나의 어렸을 적 상처를 덮고 있던 것들을 벗겨내 보여주며 괜히 때늦은 투정이라도 부려보고 싶었던 거다.

14쪽“나한테 왜 그렇게까지 모질게 했던 거야. 나 그때 혼자서 정말 힘들었어…”

순간 잠깐의 침묵, 눈물의 시간이 흐르더니 엄마는 다시금 조심스레 물었다.

“너 고등학교 때 심장 아팠던 거, 그건 지금 괜찮아?”

“응, 지금은 괜찮아.”

사실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엄마에 대한 원망이 자꾸만 느껴져서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의 엄마를 너무나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원망이라는 감정이 드는 것은 분명 모순된 것이었다. ‘사랑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라…

15쪽‘한 사람 안에 사랑과 원망이 공존할 수 있는 건가’. 그래서 과거의 기억을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던 것도 분명히 있었다. 과거의 감정은 깨끗이 잊고 지금의 내가 느끼는 좋은 감정들만 생각하면 문제가 될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와 엄마 사이에는 사랑이라는 따뜻한 감정만 남을 수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정말 가끔 지난날의 엄마를 떠올렸을 때, 내가 당시에 느꼈던 부담감과 압박감이 같이 떠오르면서 또다시 원망이라는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엄마가 과거의 행동을 후회한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생각해 보면 엄마도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었을 텐데. 엄마도 잘해보려고 그랬을 텐데. 그 방식이 조금 서툴렀던 걸까. 엄마도 처음이었으니까…

그렇게 엄마에 대해 곱씹어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속 깊게 자리 잡았었던 과거의 엄마에 대한 원망이 많이 해소되었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 뭔가 기분 좋은 홀가분함을 느꼈던 거 보면 생각보다 더 마음이 가벼워졌나 보다.

그날 이후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난날의 엄마 자신을 후회하며 괜한 죄책감에 혼자 마음 썼을 엄마가 떠올라 마냥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내가 흘린 눈물엔 단지 내 감정의 해소만 있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내 학창 시절의 악역을 자처한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도 동시에 있었던 거다. 하지만 그 이상 자세히 파고들진 않기로 했다. 이건 내 감정의 영역이 아니기에. 엄마가 느낀 감정들을 돌아보고 보듬어줘야 할 주체는 엄마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16쪽그러고 보니 결국 과거의 나뿐만 아니라 엄마도 상처를 받은 존재였을지도 모르겠다. 나 혼자만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그렇다면 과연 엄마에게 상처를 준 건 누구였을까. 딸의 성공을 누구보다 간절히 빌었던 엄마 자신이었을까. 아니면 평범한 딸이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의대뿐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이 사회였을까. 나는 엄마의 진심 어린 말에 어느 정도 치유되는 부분이 있었는데, 엄마는 누굴 통해 치유받을 수 있을까. 우리를 그토록 불안하게 만든 건 도대체 누구였을까.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성적 올리는 법’이나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공부시켜야 하는지’ 등과 같은 결과론적 공부 이야기가 전혀 아니다. 수험 생활을 겪으며 그 과정에서 우리 내면에서 일어나는 여러 상처와 회복의 과정, 그 안에서의 자기 발견에 관한 솔직담백한 우리들의 성장 이야기다.

17쪽이 책을 함께 쓴 나, 지호, 다인 우리 셋은 비슷한 목표를 이루었지만, 그 목표를 향해 떠난 항해의 방식도 가는 길도 각자 다 달랐다. 나는 엄마와 세상의 요구대로 완벽함을 추구하다 결국 쓰러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며 꾸역꾸역 걸어 나갔고, 지호는 남들보다 조금 느린 페이스로 자신만의 길을 끝까지 걸어 나갔다. 주변의 조급함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속도를 지켜낸 지호의 여정은 “정말 빠르게 가는 것만이 정답인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

다인이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달려 나가며 의대에 입학했지만, 목표 성취 이후에 찾아온 새로운 혼란에 직면한다. 그토록 바라던 목표였는데 왜 그것을 이룬 후에도 마음이 충족되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당신도 우리 이야기들 속에서 자신을 발견할지 모른다. 엄마와 나 자신을 더 이해하게 된 나처럼, 자신만의 페이스를 끝까지 지켜낸 지호처럼, 혹은 진정한 성공의 의미를 뒤늦게 다시 정의하는 다인이처럼.

18쪽이제부터 펼쳐질 우리들의 이야기가 수험생 혹은 수험생의 부모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의 마음속 상처를 살며시 두드리며, 상처가 조금씩 치유로 향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길 진심으로 소망한다. 그리고 그런 작은 발걸음이, 언젠가 당신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날갯짓’이 되길 바라 마지않는다.

여기까지가 프롤로그입니다. 1부는 그날 밤 영서가 오래된 앨범을 꺼내 드는 장면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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